황석영은 30년 동안 품어온 고향 이야기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철도원 삼대'에 풀어놓으며 한국 문학의 비워진 부분을 채워놓겠다는 마음을 넣었다. 그는 이를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려 한다.
황석영은 2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기자간담회에서 사과부터 했다. 애초 기자간담회는 지난달 28일 열릴 예정이었다. 그는 5·18 관련 행사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시계 알람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늦잠을 잤다며 "대형사고를 쳤다. 죄송하다"고 말했다.
'철도원 삼대'는 황석영이 '해질 무렵' 이후 5년 만에 내놓는 장편 소설이다. 분량만 2000매가 넘는다. 2017년 6월에는 자서전 '수인'을 내놓았다. 그는 이 과정을 "간이나 쓸개가 내장에서 떨어져 나간 것 같았다"고 표현했다.
책은 황석영에게도, 한국 문학에도 도전적인 의미를 담는다. 일제강점기에 잠깐 있었던 카프의 흔적에서 보면 노동자의 이야기는 단편적으로 다뤄지긴 했지만, 그 뿐이다.
"불온한 것이라 여겨졌고, 이념적으로 터부시 됐던 거죠. 우리는 1000만 노동자라고 하는데, 아마 더 될 거예요. 사실은 우리가 노동자로서 삶을 살고 있잖아요. 이게 한국 문학에서 빠진 게 놀랍죠."
'철도원 삼대'는 염상섭의 '삼대'의 바통을 이어받는다. '삼대'가 개화기부터 식민지 부르주아의 삼대를 통해 근대를 조명해냈다면 '철도원 삼대'는 3.1운동 이후부터 현재의 노동운동을 다룬다. 그는 이번 책을 쓰기 위해 하루 8~10시간 책상 앞에 앉았다. 기운이 달라지고 기억력도 떨어져서 주인공 이름이 자꾸 혼동돼 고생했다고 했다.
오늘날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황석영은 지나치지 못했다. 황석영은 "노동자의 노동권은 더욱 열악해졌고, 사회 외곽에서 방치된 채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작가 김훈이 최근 써낸 글을 떠올렸다.
"김훈, 그 사람은 자기가 보수라고 그래. 나는 보수·진보 다 아우르는 사람인데. 보수에서 보더라도 이건 기본 휴머니티에 어긋나는 일이고, 발언해야겠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리고 노동자의 죽음을 방지겠다는 글을 쓴 걸 보고 뭉클했어요. 사회가 좋은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돼요."
황석영은 노벨상 수상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보일 세상의 변화에 오히려 눈길이 가는 듯했다.
"우리 문명이 이 길로 잘 온 것인지 코로나 사태가 우리에게 질문을 하는 것 같아요. 시대가 변화할 때마다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써 글을 써야죠."
80대에 절필 선언을 한 작가들, 그러다가 우울증에 걸려 괴로워했던 이들을 찬찬히 떠올리던 황석영은 "죽을 때까지 쓰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게 작가가 세상에 대해 가지는 책무라는 생각에서다.
"기운이 남아있는 한 써야죠. 마구 쓰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길을 가고 새로운 작품을 써내야죠. 지금 78세니까 88세까지 어떻게 해보려고 그래. 담배부터 끊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