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가 큰 이팝나무는 싸락눈처럼 꽃이 피기 시작해 한순간 흰 쌀밥으로 변한다. 멀리서 보면 할머니가 “내 새끼, 많이 먹으랑게” 하며 수북하게 담아 주는 고봉밥 같다. 갓 지은 구수한 밥냄새가 나고 모락모락 김도 피어나는 듯하다.
밥꽃과 꽃밥. 조용히 말해 본다. 꽃도 밥도 말하기 부드러워 살갑게 느껴진다. 주변이 온통 따뜻하고 환해진 느낌이다. 엄재국의 시 ‘꽃밥’은 그래서 탄생했으리라.
“꽃을 피워 밥을 합니다/아궁이에 불 지피는 할머니/마른 나무 목단, 작약이 핍니다/부지깽이에 할머니 눈 속에 홍매화 복사꽃 피었다 집니다/어느 마른 몸들이 밀어내는 힘이 저리도 뜨거울까요/만개한 꽃잎에 밥이 끓습니다/밥물이 넘쳐 또 이팝꽃 핍니다/안개꽃 자욱한 세상, 밥이 꽃을 피웁니다”
이팝꽃엔 슬픔도 한아름 묻어 있다. 배고팠던 시절, 굶어 죽은 자식의 무덤 옆에 밥을 닮은 이 나무를 심어놓고 저세상에서라도 배불리 먹기를 비는 부모의 애절한 마음이 담겨 있어서다. 지금은 오월이 ‘계절의 여왕’, ‘가정의 달’로 불리며 온갖 축제와 볼거리, 먹거리가 풍성한 달이지만, 그 옛날엔 허리가 꺾일 정도로 배를 주렸던 보릿고개였다. “이팝나무 꽃 필 무렵엔 딸네 집에 가지 마라”라는 속담 속 궁핍한 시기가 바로 오월이다. 이팝꽃이 그냥 꽃이 아닌 밥꽃인 까닭이다.
“쌀 한 톨 나지 않는 서해 어느 섬마을엔 늙은 이팝나무가 한 그루 있지요/오백여 년 전 쌀밥에 한이 맺힌 이 마을 조상들이 심었다는 나무입니다/평생 입으로는 먹기 힘드니 눈으로라도 양껏 대신하라는 조상들의 서러운 유산인 셈이지요/대대로 얼마나 많은 후손들이 이 나무 밑에서 침을 꼴딱거리며 주린 배를 달랬겠습니까/해마다 오월 중순이면 이 마을 한복판엔 어김없이 거대한 쌀밥 한 그릇이 고봉으로 차려집니다/멀리서 보면 흰 뭉게구름 같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수천 그릇의 쌀밥이 주렁주렁 열려 있으니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지요.(후략)”
밥꽃에 얽힌 애잔한 전설을 읊은 김선태 시인의 ‘그 섬의 이팝나무’이다. 서러운 이야기를 끌어안고 이팝나무를 다시 올려다보니 꽃잎 하나하나가 정말 뜸이 잘 든 밥알 같다.
시인 이영옥은 ‘이팝나무 고봉밥’에서 독거노인의 죽음을 ‘떨어진 꽃잎’으로 더욱 애달프게 노래했다.
“…그 집의 대문이 열린 것은 혼자 살던 노인의/부음이 꽃잎처럼 떨어진 날이었다/외국에 사는 아들 내외는 너무도 담담하더란다/석 달이나 지나 발견된 해골의 구멍 안에는/캄캄한 외로움이 그렁거렸다고 한다/목련나무가 꽃등을 내리고 조문을 끝내자/대신 이팝나무가 하얀 고봉밥을 가득 담아/담 위로 고개를 쭈욱 내밀고 있더란다/잘 먹어야 그리움도 훤히 켤 수 있다는 듯이”
이팝은 이래저래 먹는 것과 관련 있는 꽃임이 분명하다. 이팝나무란 이름도 흰 쌀밥을 뜻하는 ‘이밥’에서 왔다. 꽃이 만발하면 농사가 잘돼 쌀밥을 실컷 먹을 수 있다며,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단다. 꽃을 보며 내 식구뿐만 아니라 이웃들도 배 곯지 않기를 빌었다고 하니 타고난 성품이 참 착한 우리 민족이다.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立夏) 무렵에 꽃을 피우는 입하나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입하가 이파로, 다시 이팝으로 됐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비 내리는 날, 이팝나무를 가만히 보면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온몸으로 비를 맞은 나무는 초록이 한층 짙어지고 이파리는 훨씬 넓어진다. 살포시 떨어지는 이팝꽃은 유난히 뽀얗다.
오늘 저녁엔 흰 쌀밥에 소고깃국을 끓여 식구들과 두레반(크고 둥근 상)에 둘러앉아 먹어야겠다. 행복이 뭐 별건가? 식구들 배불리 먹고 속 편하면 됐지. 괴테도 “가정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