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준 한국 유통업계 3위 기업은 쿠팡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업 유로모니터 인터내셔널은 최근 ‘2020 아시아 100대 유통기업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의 순위는 전년도 매출이 기준이다. 보고서에서는 한국 1, 2위 유통기업으로 롯데와 신세계를 꼽았다. 그러나 3위는 의외였다. 현대백화점, GS리테일, 홈플러스 등을 따돌린 주인공은 다름 아닌 쿠팡이었다.
쿠팡이 소프트뱅크로부터 추가 투자를 유치했을 당시만 해도 언론의 반응은 꽤 회의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일부 언론은 2년짜리 산소호흡기를 부착했을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이 간과한 것이 있다. 적자의 이면에 숨은 성장이다.
쿠팡은 언론의 비판을 비웃기라도 하듯 계속 적자행진을 이어갔고 적자폭도 좀처럼 줄지 않았다. 그러나 외형적인 성장은 그보다 컸다.
지난해 쿠팡은 7조1530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64.2%나 성장한 수치다. 영업손실 역시 7205억 원으로 36% 감소하며 ‘조단위 손실을 내는 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뗐다.
유로모니터 보고서에서 쿠팡은 또 한번 의미 있는 이커머스의 역사를 새로 썼다. 지난해 쿠팡의 아시아 유통기업 순위는 57위였지만 1년 만에 단숨에 38계단을 뛰어오르며 19위에 오른 것이다. 롯데나 신세계가 전년 수준을 기록하고 주요 유통업체들이 줄줄이 순위가 하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쿠팡의 성장은 중국의 알리바바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아시아 NO.1’ 알리바바가 설립될 당시 성공을 예상했던 이가 얼마나 됐을까.
설립 초기부터 수년간 대규모 적자를 내던 알리바바는 지난해 매출 5097억1100만 위안(약 88조1800억 원), 영업이익은 914억3000만 위안(약 15조4300억 원)을 기록했다. 알리바바의 한 해 매출은 한국 이커머스 시장 연간 규모에 육박한다. ‘미운오리새끼’였던 알리바바는 화려한 백조로, 아시아 유통 맹주로 거듭났다.
두 기업은 의외로 공통점이 많다. 양사 모두 소프트뱅크로부터 투자를 받았고 물류 인프라 확충에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었다. 설립 초기부터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한 것도 닮은꼴이다.
그러나 적자는 그들에게 있어 투자의 개념이었다. 이것이 투자였음은 알리바바의 사례에서 이미 입증됐다. 알리바바는 중국을 넘어 글로벌이 주목하는 기업으로 성장했고 수조 원대 수익을 내는 기업으로 변모했다.
올해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언택트 소비가 확산되면서 이커머스 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 괄목할 만한 성장을 기록할 분위기다. 유통 대기업들도 온라인에 과감하 투자하며 쿠팡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지인 중 한 명은 “국내 온라인쇼핑은 쿠팡이 있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한다. 그만큼 쿠팡이 대한민국 유통시장에 미친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다. 한때 쿠팡의 적자를 비판했지만 이제 쿠팡에 격려를 보낸다. 그들이 바꾼 유통 패러다임이 한국을 넘어 세계에서 인정받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yhh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