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강화하면서 한국 기업들은 반도체나 LCD 패널 생산에 필수 소재인 불화수소 등을 자체 조달 가능한 제품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 여파로 일본 소재업체들의 실적에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앞서 일본 정부는 작년 7월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세 가지 품목에 대해 한국으로의 수출을 규제한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대법원이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린 데 대한 보복 조치의 일환이었다. 이 세 품목은 일본 의존도가 70~90%에 달했던 만큼 파장은 컸다.
이후 세계 최대 LCD 패널 제조업체인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 11월경부터 패널 제조공정에서 사용하던 불화수소를 100% 국산화하고, 삼성전자도 국산 재료를 사용하거나 공급처를 다변화하면서 오히려 일본 기업들을 당혹케 했다.
그동안 LG디스플레이는 일본 스텔라케미파가 만든 초고순도 불화수소를 한국 솔브레인이 100배로 희석한 제품을 써왔다. 하지만 일본의 수출 관리가 엄격해지면서 관련 리스크를 검토한 결과, 충분히 희석하기 때문에 굳이 일본에서의 정밀한 생성 공정을 거치지 않아도 문제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따라 LG디스플레이는 솔브레인이 자체·가공한 제품을 채택, 패널 생산 라인에 도입했다.
이 여파는 실적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11일 발표된 스텔라케미파의 2019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 순이익은 전년 대비 1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텔라케미파는 “한국으로의 수출 규제 여파로 반도체 액정용 불화수소 수출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주력인 고순도 불화수소의 출하량은 전년 대비 30%가량 줄었다.
불화수소 분야에서 스텔라케미파와 함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모리타화학공업은 지난 1월 수출을 재개한 후에도 한국으로의 수출이 수출 규제 이전에 비해 30% 감소했다고 한다.
그동안 전 세계 LCD 패널 및 반도체 업체들이 일본의 첨단 소재를 사용해온 건 품질이 좋은 데다 가격도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패널이나 반도체 제조는 100개 이상의 섬세한 공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일부 재료를 변경하면 불량품이 발생할 위험이 높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강화로 이런 관행도 다 틀어졌다는 지적이다.
LCD 패널보다 더 많은 양의 불화수소를 사용하는 반도체 생산에서도 공급처를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삼성전자는 “경제 합리성을 생각하면 일본에서 조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도 반도체의 안정적인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 공정의 일부를 한국 내에서 조달할 수 있게 전환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만약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작년 7월 이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다시 일본제를 쓰진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