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근원물가 상승률이 0%대 초반으로 하락하며 한국 경제의 디플레이션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소득이 감소한 국민이 늘어 수요 감소가 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식료품 및 에너지제외지수’는 전년 대비 0.1% 증가에 그쳤는데, 이는 1999년 12월(0.1%) 이후 20여 년 만에 최저치다. 이 지수는 원유, 농산물처럼 공급 측 요인에 의해 가격이 널뛰는 품목을 빼고 산출한 물가 상승률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 지표이기도 하다. 정부는 수요 둔화에 고교 무상교육,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 효과가 겹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근원물가의 장기 추세 등을 근거로 이와 다른 분석도 있다. 지난 5년간 근원물가 상승률을 보면 2015년 2.4%, 2016년 1.9%, 2017년 1.5%, 2018년 1.2%, 2019년 0.7% 등을 기록하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박석길 JP모건 본부장은 “코로나19가 디플레이션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감염병 여파에 수요가 줄어들며 앞으로 수개월 동안 근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준범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근원물가마저 하락하기 시작하면 디플레이션 징후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며 “유가나 농산물 등 공급측 요인을 빼놓고 보더라도 수요 부진에 물가 상승 압력은 낮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여파의 실직자 또는 휴업자 증가로 생활 속 거리두기가 풀리더라도 소비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이 일회성이라 소비를 끌어올리기에 역부족일 것이라는 예상 등과 유사한 시각이다.
반면 물가 하락이 코로나19에 따른 일시적 현상인 만큼 현 상황을 디플레이션이라고 진단하기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물가 하락이 일정 시간 이상 지속돼야 디플레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며 “수요 부진이 해결되느냐, 유가가 조금씩 오르고 글로벌 경제가 활력을 찾느냐가 디플레이션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만큼 금융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박 JP모건 본부장은 “한은이 물가 상승률을 높이기 위해 올해 3분기와 내년 1분기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