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의 노동과 법] 코로나 위기 극복과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

입력 2020-05-0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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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근로자의 날에 ‘노동자는 우리 사회의 주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메시지가 상징하듯 최근 들어 노동계의 위상과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 민주노총의 조합원 수가 급증하여 설립 이래 처음으로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1노조가 되었고, 이제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거치지 않고 정부에 직접 교섭을 요구하고 나서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0% 전후로 지지부진했었는데, 최근 들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89년 이래 가장 많이 늘었다. 노조 조직률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는 다른 선진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처럼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조직이 활성화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일 수도 있지만, 우려되는 점 또한 적지 않다.

우선 노동조합의 정치 권력화이다.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정치활동이 허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근로조건의 유지·개선이나 근로자들의 사회적·경제적 지위 향상과 관련해서는 당연히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한도를 넘어 기성 정당과 같은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현행법이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주로 정치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이유이다. 그런데 요즈음 민주노총의 행보를 보면 정치단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정치에 적극적이다.

거대 노조의 권력화 현상은 산업현장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수년 전부터 건설현장은 ‘노조공화국’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노조의 ‘갑질’이 극성을 부리고 있다. 전국의 아파트 공사현장에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서로 자기 소속 조합원과 장비의 투입을 강요한 나머지, 두 집단 사이에 난투극이 벌어져 부상자가 속출하고 고소고발이 끊이질 않고 있다. 또한 이들은 건설사가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공사현장을 봉쇄하고 살벌한 세력 다툼을 벌이는가 하면, 한 건설노조는 채용공고에서 무술 유단자를 우대조건으로 내거는 등 노조공화국의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고 있다.

한편, 노동절을 이틀 앞둔 지난달 말에는 이천의 한 물류센터의 공사현장에서 38명의 근로자가 화마에 희생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용접 시에 인화성 물질에 비화(飛火)된 것이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하나, 관계기관으로부터 여러 차례 위험 경고를 받고도 이를 묵살해온 소위 ‘안전 불감증’이 가져온 인재(人災)이다. 이번 참사는 사고 원인에서 피해 상황에 이르기까지 40명이 숨진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의 판박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대형 참사 때마다 희생되는 근로자들은 대부분이 하청근로자이거나 일용직 또는 이주노동자 등 노동현장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자들이라는 점이다.

민주노총은 최근 코로나 위기에 대비해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원포인트 노사정 협의체’를 제안한 바 있다. 명분은 총고용 보장이지만 속내는 기득권층 근로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나 해고 금지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이 유독 사회적 책임이 동반되는 경사노위에는 참가하지 않고 별도의 협의체를 제안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총선 이후 민주노총의 사회적 책임을 방기하고 그 영향력을 유지 확대하려는 이기적인 발상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한국노총 또한 사회적 대화 참여에 대한 입장을 유보하고 있는데, 이는 민주노총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속셈인 듯하다.

작금의 상황은 양대 노총이 헤게모니 다툼을 벌일 만큼 녹록지 않다. 고용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1인 자영업자 수는 전년 대비 22만5000명이 줄어들어 2009년 이래 처음으로 감소했다. 특히 고용한파의 직격탄을 맞은 임시일용직의 경우 전년 대비 12만4000명이 급감했다. 이들 대부분은 고용보장은 물론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생계 위기에 내몰린 취약계층이다. 코로나 위기로부터 이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조속히 사회안전망을 정비하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차원에서 고통을 분담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미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된 노동조합의 양보와 타협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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