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세상] 전쟁을 견더낸 한 그루의 고목처럼, 영화 ‘1917’

입력 2020-04-3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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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코로나19 사태로 극장 안은 썰렁하다 못해 고요했다. 나를 포함하여 관객은 겨우 3명. 마스크를 깜빡 잊고 영화관을 찾은 나로선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어느덧 공동운명체가 되어버린 극소수의 관객들은 서로가 조심하자는 눈인사를 보낸다. 널찍이 떨어져 앉아 나는 왜 이런 시국에 이 영화를 극장에서 꼭 봐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이내 깨닫는다. 애프터 코로나19 시대에는 극장이 소멸할 거라고 얘기하지만 대형 스크린을 갖고 있는 이곳은 ‘1917’ 같은 영화로 오랜 시간 더 버틸 것이다. 불이 꺼지자 나는 전투를 앞둔 군인의 심정으로 스크린을 쏘아보았다.

‘1917’은 관객 빙하기에 극장에서 그나마 가장 잘 나가고 있고, 장기 상영 중에 있다. 개봉을 미루고 몸을 사리고 있는 영화를 대신해서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총알받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서사의 빈약함이 영화의 치명적 약점이라는 얘길 들을 정도로 스토리는 간단하다. 1917년 4월 6일, 서부전선의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조지 매케이)와 블레이크(딘 찰스 채프먼)는 독일군의 함정에 빠진 데본셔 연대의 메켄지 중령(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전쟁터 한가운데를 가로지른다.

1917년은 1차 세계대전의 분수령이 되는 한 해였다. 세르비아의 한 청년이 쏜 총탄에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피살되는 사건을 계기로 잠재되어 있던 유럽의 화약고인 발칸반도는 삽시간에 제국주의의 전쟁터가 되고 만다. 금방 끝나리라 생각했던 전쟁은 참호의 진흙 구덩이에 빠진 병사들의 군화마냥 헤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최악의 장기전으로 돌입한다. 예전의 전쟁 양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기관총, 전차, 대포 등 당시로선 가장 현대적인 무기로 무장하였고 무차별 대량살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무려 1천만 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1차 세계대전은 한마디로 진흙탕과 고양이 크기의 쥐와 굶주림, 전염병이 일상화된 목불인견의 참호전이었다. ‘1917’은 이런 참호전의 아비규환을 시각적으로 완벽하게 재현해 놓았다.

명령을 완수한 스코필드는 한 그루 거대한 고목 아래에 털썩 주저앉는다.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겪은 일들이 하룻밤의 악몽이 아닌가 가늠할 뿐이다. 그래도 이 전쟁통에 버팀목이 돼주고 있는 고목을 보며 다시금 희망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생겨나길 바라고 있을 뿐. 어디 스코필드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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