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흥 거모지구 규모를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주택 공급 과잉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시흥시 일대 신도시가 ‘집값 제로섬 게임’을 벌일 수 있다는 걱정이다.
최근 10년간 시흥시에 들어선 택지지구ㆍ도시개발지구는 배곧신도시와 능곡지구, 목감지구, 은계지구, 월동지구 등 5곳이다. 이들 지역에 들어설 전체 가구 수는 3만9957가구, 계획 인구만 14만611명에 이른다. 웬만한 지방 중소도시에 맞먹는 규모다. 올해도 시화 멀티테크노밸리(MTV)가 완공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본격 개발될 사업도 적지 않다. 대규모 개발사업지만 해도 장현지구와 월곶역세권, 하중지구, 거모지구 등이 남아 있다. 내년부터 차례로 한 곳씩 완공되기 시작해 2024년까지 총 3만3469가구(8만1352명)가 공급된다. 이 가운데 거모지구만 해도 3기 신도시인 과천지구(7000여 가구)보다 규모가 큰 중형 개발사업지다.
부동산 업계에선 동시다발적인 택지 개발사업이 공급 과잉과 주택 거래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전망이 일찌감치 나왔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8년 열린 세미나에서 “공급 과잉이면서 정체되는 지역으로 공급 관리가 필요하다”고 시흥시 주택시장을 평가했다. 그러면서 공공택지와 민간 분양 물량을 조정할 것을 권고했다.
시흥시에선 배곧신도시 등에서 한참 입주 물량이 쏟아지던 2017~2018년에도 공급 과잉을 겪었다. 일시에 신규 주택이 시장에 풀리면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시흥지역 주택시장은 다시 그에 못지 않은 ‘공급 폭탄’을 마주하게 됐다.
택지지구 간 연담화는 공급 과잉 우려를 더욱 키우고 있다. 시흥시 북쪽 광명시에선 하안2지구(5400가구)·학온지구(5280가구)·구름산지구(5000가구) 등이, 남쪽 안산시에선 장상지구(1만3000가구)·신길2지구(7000가구) 등이 개발 추진 중이다. 이 가운데 신길2지구는 거모지구와 맞붙어 있어 사실상 하나의 신도시처럼 개발될 가능성이 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글로벌 경기 하강과 주택시장 위축은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경기 하강과 공급 과잉 탓에 후폭풍으로 수도권에서만 고양 풍동2지구, 인천 검단2지구, 금천구심 개발 등이 좌초됐다. 이 때문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택지 공급 중단을 선언하기까지 했다. 주변 집값도 공급 물량이 해소될 때까지 오랫동안 부진을 겪었다.
양지영 양지영 R&C연구소 소장은 “공급은 수요가 있는 곳에 하는 게 맞다”며 “시흥이나 광명 등에 지정된 택지지구는 경기 외곽 수요를 끌어올 순 있어도 서울 주택 수요를 흡수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 지역에서 주택 공급이 일시에 몰리면 주변 일대 집값도 한동안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