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시흥시 거모지구는 도심 속 농촌이다. 인근 장현동과 장곡동에는 아파트 단지가 하나둘 들어서고 있지만, 그린벨트로 묶인 이곳은 오랫동안 미개발지역으로 남았다. 2018년 신혼희망타운 부지로 지정된 이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보상을 준비했다. 포도원엔 ‘지장물 조사 반대’라고 쓰인 붉은 현수막이 붙었다. 대로변엔 각각 ‘토지주 대책위원회’, ‘보상대책위원회’를 자처하는 컨테이너 박스가 들어섰다. 올해부터 지급되기 시작하는 보상금을 더 많이 챙기기 위해서다.
거모지구에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개발사업이 1년 넘게 지연되고 있다. 이 사업은 시흥시 거모동과 군자동 일원의 그린벨트로 묶인 152만㎡(46만 평)의 부지를 해제해 임대주택을 비롯해 1만 호가 넘는 공공주택을 건설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 결과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계획 추진이 표류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에 따르면 거모지구는 2018년 12월 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됐다. 거모지구 일대 부지를 풀어 공동주택가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국토부와 LH는 해당 지구에 청년과 신혼부부 등의 주거 안정을 위한 임대주택 등 공공주택 1만1000여 호를 공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환경부가 반대하고 나섰다. 부지 인근에 저어새가 출몰한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전략환경영향평가 결과 거모지구 인근에 저어새가 서식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환경부는 당초 약 152만㎡의 계획 부지 중 22만여㎡(7만 평)를 제외시키자는 의견을 냈다.
결국 개발사업은 152만㎡에서 22만여㎡를 뺀 130만㎡(39만 평)로 축소됐다. 그러자 이번에는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제척된 22만여㎡의 토지주 등이 개발사업에 해당 부지를 포함시켜 달라며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여기에는 4·15 총선에서 시흥을 지역구에 출마해 5선에 성공한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 의원 측은 이번 총선 공약으로 거모지구 사업의 조기 완공을 내세웠다. 당선 후에는 사업을 시작한 본인이 책임을 지고 완성하겠다는 뜻을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LH는 지난해 전략환경평가를 다시 진행했다. 민간 환경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제척 지역을 수개월에 걸쳐 정밀 조사한 결과, 저어새가 서식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LH 관계자는 “2018년 당시에는 소수의 저어새가 발견됐다는 평가 결과를 내 환경부에서 제척했었다”며 “지난해에는 저어새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환경부에 다시 제출했고, 환경부에선 7만평을 지구에 포함시키는 대신 친환경 지구로 조성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거모지구 개발사업이 환경부 반대를 가까스로 넘어섰지만 첫 삽을 뜨기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먼 실정이다. 당장 내달 초 국토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앞두고 있다. 중도위는 국토부 소속 공무원을 제외한 환경과 재해, 건축, 도시 등 각 분야 민간 전문가 20여명으로 구성된다. 심의가 면밀하게 이뤄지는 만큼 환경영향평가 결과와, 이에 따른 22만여㎡의 제척 번복 사유를 놓고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는 전언이다.
중도위 심의 결과는 6월경 나올 전망이다. 국토부는 심의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여기에 맞춰 사업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공공주택 건립을 더 이상 지연시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LH는 거모지구에 짓는 1만1000여 가구 중 63%를 공공주택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중도위 심의 결과나 나온 후 올 연말까지 사업계획을 수립해 내년 상반기 승인을 받는다는 구상이다. 예정대로 진행되더라도 본격적인 사업 착수는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가능해질 전망이다. 당초 2020년 착공, 2024년 입주 목표에서 한참 연기된 결과다.
곽창석 도시와공간 대표는 “국토부와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를 두고 오락가락하면서 정책의 신뢰도 역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커졌다”며 “시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택지지구 개발 과정에서 명확한 기준조차 설정하지 않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시흥시 일대에 택지 개발이 무더기로 진행되면서 공급 과잉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사정이 이런데도 공공주택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해 추진하면 여러 부작용이 뒤따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정필 기자 ·박종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