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급락 여파로 파생상품 시장이 극심한 몸살을 겪고 있다. 원유에 몰렸던 투기성 자금이 금, 구리, 천연가스 등 다른 원자재 상품으로 옮겨가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3일 한국거래소는 이날 원유 선물을 비롯한 원자재 관련 25개(전체 60개) ETN(상장지수증권) 종목에 대해 괴리율이 초과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이중 21개는 레버리지(9개)와 인버스(12개)로 단기 상승과 하락에 베팅해 두 배 수익(손실)을 보는 투기성 상품이다. 괴리율은 평균 186.92%에 달했다. 통상 정상적인 환경에서는 1~2%를 기록한다.
괴리율은 자산의 실제 지표가격와 시장가격의 차이를 보여준다. 가령 괴리율이 높은 건 주가가 현재 원자재 가격보다 비싸게 거래되고 있단 의미다.
특히 국제유가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최근 일부 원유 상품에서 괴리율이 900%을 넘어서는 일이 발생했다. ETN은 자산 가치가 0원이 되면 자동 상장폐지되기 때문에 해당 상품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전액 손실을 볼 가능성도 커졌다. 이에 한국거래소는 거래를 일시 정지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했지만 해당 자금은 다른 원자재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전균 삼성증권 연구원은 “3월 이후 일방적인 수급쏠림 현상으로 가격과 지표가치 간 괴리가 급변동하고 있다”며 “미국도 VIX(변동성지수) 선물 매수 ETN가 연초 이후 266% 폭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유나 금 등 해외 자산 선물 등락이 다음날 바로 시장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란 점도 유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경제가 마비된 영향이다. 특히 원자재 수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이 타격을 입으면서 철강과 금속, 곡물 가격 등이 급락했다. 투자자들은 이러한 변동성을 이용해 단기 차익을 얻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변종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팬데믹 사태 이후 시장의 관심은 중국의 경기 부양에 모아지고 있다”며 “철강 재고가 사상 최고치로 급증하며 가격이 급락했고 금과 은도 현금 수요 급증으로 매도세가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선진국을 중심으로 초저금리가 상당부분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한달 간 거래량이 폭증한 원자재 ETN은 원유를 비롯해 옥수수, 금, 구리, 니켈 등이다. ‘대신 WTI원유 선물(H)’의 거래대금은 5억8800만 원으로 전월(3700만 원) 대비 1489.19% 급증했다. 이어 ‘신한 옥수수 선물(H)’(1022.22%), ‘신한 금 선물(H)’(260.71%), ‘신한 은 선물(H)’(205.08%), ‘신한 구리 선물(H)’(233.33%), ‘삼성 Alerian 에너지인프라 MLP’(100.00%)가 뒤를 이었다.
가격 하락을 추종하는 인버스도 자금이 급격히 늘었다. 일주일 간 ‘대신 인버스 2X 니켈선물 (H)’ 거래대금은 2000% 급증했다. 이는 같은 기간 가장 많은 자금이 몰린 원유 ETN(미래에셋 인버스 원유선물혼합, 1765.79%) 보다도 높다. 이밖에 ‘신한 인버스 은 선물(H)’(1500.00%), ‘삼성 인버스 2X 구리 선물(H)’(1450.00%), 'TRUE 인버스 2X 천연가스 선물(H)'(645.28%) 순이다.
주목할 대목은 해당 상품들이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한 인버스 2X 천연가스 선물(H)’(-22.84%)을 시작으로 ‘삼성 레버리지 은 선물(H)’(-11.11%), ‘미래에셋 원자재 선물(H)’(-10.37%), ‘삼성 레버리지 구리 선물(H)’(-5.49%), ‘대신 인버스 2X 니켈선물(H)’(-5.48%), ‘삼성 레버리지 금 선물(H)’(-5.47%), ‘대신 2X 아연선물(H)’(-3.86%), ‘신한 옥수수 선물(H)’(-3.47%), ‘신한 콩 선물(H)’(-1.96%) 등이 모두 손실을 보고 있다.
국제유가처럼 비정상적으로 가격이 요동칠 경우 손실로 직결되는 만큼 원자재 투자는 주의가 필요하다. 한국거래소는 원유와 금속, 구리, 천연가스, 은, 옥수수 관련 ETN 상품에 대해 “변동성이 매우 높다”며 “괴리율이 지나치게 높거나 낮은 경우 투자에 유의해야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