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아의 방주

입력 2020-04-23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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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산업부 기자

성경 ‘창세기’에는 대홍수의 기록이 있다. 신은 인간의 악행이 만연해지자 이를 벌하고자 홍수를 내리기로 마음먹었다. 노아라는 단 한 명의 인간은 예외를 두기로 했다.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어 그의 가족과 동물을 태우도록 했고 40일간 폭우가 내린 뒤 노아의 방주는 아라라트 산에 멈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창궐로 현대판 노아의 방주가 마련됐다. 코로나19의 위기가 경제계로 확산되자 정부는 이에 대응하기 위한 방주를 만들고 기업 구하기에 나선 것이다. 방주에는 대기업의 자리도 마련됐다. 정부가 항공·해운·자동차 등 7개 기간산업에 40조 원 이상을 투입하기로 했다.

코로나19 위기를 오롯이 맨몸으로 견뎌야 했던 대기업도 방주에 오르며 한숨을 돌리고 있다. ‘국민 혈세의 대기업 투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이번 지원으로 생존의 갈림길에 섰던 대기업들은 유동성에 숨통이 트이며 눈앞의 도산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번 현대판 노아의 방주에는 비가 그친 뒤 노아의 가족과 동물들의 번성을 보장한 신의 약속은 존재하지 않는다. 위기가 끝난 뒤 생존할 것인지는 대기업의 노력에 달렸다. 대기업은 정부의 지원을 바탕으로 정상화를 위해 자구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이번 지원이 ‘특혜’로 귀결되지 않도록 고용 안정과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해 사업 효율화, 비유동자산 매각 등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만큼의 자구 노력이 있어야 한다.

방주의 문은 곧 열린다. 대기업이 방주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위기 극복의 선봉대가 될지, 배부른 자본세력이 될지 세간의 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우리 사회는 ‘살찐 고양이(fat cat)’를 기억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에 투입됐지만, 이는 구조조정과 임금삭감에 내몰린 직원이 아닌 경영진의 탐욕만 충족해줬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2011년 미국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우리나라에서 재현되지 않도록 대기업의 자구 노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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