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초 읽기 들어간 기간산업…손 놓고 바라보는 정부

입력 2020-04-12 16:00 수정 2020-04-1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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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업ㆍ항공ㆍ자동차 등…자산 매각으로 현금 확보 안간힘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그래픽=손미경 기자 sssmk@)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유동성 위기에 몰린 국내 주요 기업들이 유형자산과 지분 매각 등을 통해 급한 불을 끌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상당수 국가들이 파격적인 지원 방안을 발표한 것과 달리 우리 정부의 ‘미온적’ 태도가 이같은 위기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항 이용객이 감소한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 모습. 국내 항공사들은 유동성 위기에 자산매각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다. 각국 정부가 자국 항공사 지원을 위해 수십조 원을 내놓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 대응은 미온적 수준에 머물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뉴시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항 이용객이 감소한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 모습. 국내 항공사들은 유동성 위기에 자산매각으로 힘겹게 버티고 있다. 각국 정부가 자국 항공사 지원을 위해 수십조 원을 내놓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 대응은 미온적 수준에 머물고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뉴시스)

◇비핵심 자산과 토지, 지분까지 매각 중= 12일 재계와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매각이 진행되고 있는 유형자산이 속속 증가하고 있다.

이미 붕괴 위기에 처한 항공업계는 마른 수건까지 쥐어짜고 있다. 작년 말까지 18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던 대한항공은 올 1분기 영업손실만 25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우려된다. 결국, 현금 확보를 위해 비핵심 자산의 매각에 매달리는 형국이다.

한진그룹은 지난달 27일 유휴 자산 매각 주간사 선정을 위해 관련사에 자문 제안 요청서(REP)를 발송했다. 동시에 △서울 종로구 송현동 토지와 건물 △대한항공 보유 ㈜왕산레저개발 지분 △제주 파라다이스 호텔 토지 및 건물 등을 매물로 내놨다.

이밖에 미국 LA 윌셔그랜드센터 및 인천 그랜드 하얏트 등을 정리해 현금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부채비율 1300%가 넘는 아시아나와 저비용항공사(LCC)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은 단기차입금을 확대하는 동시에 지분증권 매각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나마 팔 수 있는 자산이 있다면 다행이다. 유형자산조차 없는 이스타항공은 결국 직원 20%에 대한 구조조정 계획을 내놨다.

(그래픽=이투데이)
(그래픽=이투데이)

◇돈 되면 다행…팔아도 남는 게 없다=정부의 탈원전 정책 이후 유동성 위기가 가중된 두산중공업 사정은 더 절실하다.

두산은 그룹 계열사인 두산솔루스의 지분 61% 전량을 매각할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그룹은 이를 포함한 자구안을 마련해 두산중공업 채권단에 제출할 계획이다.

비핵심 사업으로 손꼽혀온 유통 사업을 정리해 현금을 확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면세점 사업 철수한 ㈜두산이 ‘두산타워’를 매각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다만 이미 이를 담보로 1500억 원에 달하는 채권을 발행한 만큼, 매각 이후에 얻을 수 있는 현금성 자산이 많지 않다는 게 딜레마다.

현대제철도 매각주간사를 선정하고 서울영업소가 들어선 서울 서초구 잠원동 사옥을 매각한다.

현대제철 측은 “애초 코로나19 확산에 앞서 영업본부 조직을 통합하기 위해 잠원동 사옥 매각을 결정했다”면서도 “결국 영업본부 통합 전략으로 유동성까지 확보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래픽=이민지 기자 leem1029@)
(그래픽=이민지 기자 leem1029@)

◇국제유가 하락에 정유사 마진은 역주행=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1분기 기준 역대 최악의 실적을 낼 것으로 우려되는 정유업계도 시름이 깊어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올 1분기에 유가 하락에 따른 재고 손실만 7500억 원을 감당해야 한다. GS칼텍스의 재고평가 손실도 45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국제유가 하락에 석유제품 판매 급감 탓에 정제유를 되팔 수도 없는 상황에 부닥치면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셈이다.

자동차 업계도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유동성 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마저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는 가운데 외국계 기업인 한국지엠과 르노삼성도 긴축에 나섰다.

문제는 대주주 인도 마힌드라의 자금지원이 끊긴 쌍용차다. 마힌드라의 400억 지원을 출자전환으로 결정하고, 부산물류센터 매각을 완료해 이달 말 현금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이런 대응이 단기처방에 머물 뿐,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게 문제다.

업황 부진 여파를 받은 한국타이어 역시 현금성 자산 확보에 나섰다. 부산 영도 물류센터 용지 등 유휴 자산을 매각해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고 미래 투자 재원으로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밖에 타이어와 무관한 관광 관련 계열사 매각 가능성도 제기됐다. 최근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자동차 주행 체험 시설 운영’을 사업목적에 추가한 만큼, 이와 연계될 수 있는 사업을 구상해왔지만, 사태가 지속하면 이조차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주주 인도 마힌드라의 신규자금 지원이 중단된 쌍용차 역시 부산물류센터를 포함한 자산 매각으로 대응 중이다. 다만 이를 통해 버틸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다는 게 문제다.
▲대주주 인도 마힌드라의 신규자금 지원이 중단된 쌍용차 역시 부산물류센터를 포함한 자산 매각으로 대응 중이다. 다만 이를 통해 버틸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다는 게 문제다.

◇붕괴 초읽기 들어간 기업…손 놓고 바라보는 정부= 벼랑 끝에 몰린 기업들이 팔수 있는 건 다 매각하는 등 고강도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정부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예컨대 미국과 중국이 항공업계를 살리기 위해 각각 우리 돈 74조 원과 18조 원을 내놨고 싱가포르 마저 16조 원을 투입하는 반면, 우리 정부의 지원은 3000억 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금에서야 대형항공사(FSC)를 포함해 2조 원 지원을 검토중이지만 이 역시 불확실하다.

미국과 유럽이 코로나19로 위기에 몰린 기업에 대해 대대적인 지원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우리 정부의 구체적인 지원은 4‧15 총선 이후에나 가닥이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이날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정부는 추가 유동성 공급 대책의 하나로 증권사 등을 대상으로 한 회사채 담보 비상대출 프로그램을 이르면 이번 주 중 발표한다.

한은이 우량 회사채를 담보로 제2금융권에 자금을 직접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회사채의 발행, 유통에 관여하는 증권사가 주 대상이다. 일반 증권사를 상대로 대출을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와 여당이 총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기업 지원책을 내놓기 부담스러워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미 나왔고 현실적으로도 그렇다”라며 “코로나19 출구 전략은 기업지원에 집중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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