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에 구멍이 났다. 돈은 없는데 쓸 곳은 넘쳐난다. 그래도 사치가 아니라 꼭 쓸 수밖에 없는 돈이다. 돈을 써야 최소한 돈이 들어올 여지를 만들 수 있다. 일단 돈을 풀어 급한 불을 끄고 돈을 버는 선순환이 절실하다. 어쩔 수 없이 써야 한다면 조금 더 후순위의 지출을 줄여야 한다.
나라살림 적자 폭이 역대 최대로 커지고 적자 비율이 10년래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 투입이 늘고 있다. 전 국민에게 긴급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가능성도 커졌다.
지난해 관리재정수지는 54조4000억 원 적자다. 1년 새 늘어난 적자 규모는 43조800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은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0년 이후 최대였다. 직전 최고치였던 2009년 금융위기 때(-43조2000억 원)보다 10조 원 많다.
국가 재정 여건이 어렵지만 현재 경제 상황은 과감하고 적극적인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 정부도 대규모 재정을 동원해 민생과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경기부양 타이밍을 놓치면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의 장기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 역시 재정지줄 확대가 경제 회생의 마중물로 쓰여 경제성장으로 이어지고 세수가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 구축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경험에 비춰볼 때 지금 시점은 재정건전성 문제보다 경기부양을 위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환자를 살려놔야 일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정부는 뼈를 깎는 지출구조조정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2차관은 "과감하고 전면적인 지출구조조정 없이는 적극적 재정정책의 효과도 희석될 수밖에 없다"며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지출구조조정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유사·중복사업, 연례적으로 집행이 부진하거나 관행적으로 이어진 보조·출연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며 "지출 구조조정 방향에 기반해 6월 말까지 분야별로 구체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관심은 구조조정 대상이다.
우선 국방·농어촌·환경·사회간접자본(SOC) 분야 중에서도 코로나19로 사업 자체가 취소되거나 집행이 부진한 사업이 대거 감액될 전망이다.
국방에서는 이미 지난달 한미연합훈련이 취소됐다. 3월 예비군 훈련도 이달 중순 이후로 미뤄졌지만 당장 재개될 가능성은 적다. SOC와 농어촌 지역 토목사업도 코로나19로 공사인력 수급이 어려워 집행이 더딜 것으로 보인다.
교육과 경제, 주택·지역개발 분야를 중심으로 지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의 정부 총지출 대비 교육 지출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3배로 집계됐고, 학령인구 감소까지 고려하면 교육 분야가 지출 구조조정의 핵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기재부가 서강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타국의 지출구조조정 사례분석' 용역보고서를 보면 2016년 기준 한국의 정부 총지출 대비 교육 지출 비율은 16.1%로, 32개 주요국 가운데 칠레(20.6%), 이스라엘(17.7%) 스위스(16.4%)에 이어 3번째로 높았다. 이는 OECD 평균인 12.3%의 1.3배, 주요 7개국(G7) 평균인 10.5%의 1.5배 수준이다.
경제 분야와 주택·지역개발 분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출 비율도 사회·경제적 요인을 고려할 때 OECD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나 마찬가지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컸다.
연구진은 "OECD 다른 국가에 비해 사회복지 예산 규모가 작은 한국으로서는 다른 국가와 유사한 일반공공행정·사회복지 지출 축소가 가능치 않다"며 "GDP 대비 일반공공행정 지출에서 가장 큰 몫이 지방재정교부금이고 국세와 지방세 조정 없이 이를 줄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론은 경제 분야, 주택 및 지역개발 분야 및 교육 분야 지출 비중을 줄이는 것"이라며 "특히 학령인구 감소가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교육 분야가 지출 구조조정의 핵심이 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