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왜 한국은행법이 대일청구권의 근거인가? ‘법으로 본 한국은행’

입력 2020-04-06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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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580쪽|3만5000원|율곡출판사, 현직 한은맨이 정리한 첫 단추부터 잘못 낀 한은법

‘제118조 제4항에 따른 재무부장관과 한국은행 총재와의 대출계약은 체결되지도 않았다. 한국은행이 재무부에 보고하기를, 조선은행으로부터 양도받은 자산과 부채가 일치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한 때문이다. 이는 당시 조선은행 직원들이 내부적으로 약 4억 원 정도의 부실이 있다고 평가한 것과 상충된다. (중략) 정부와 조선은행은 조선은행에 마치 3억 원의 적립금이 있었던 것으로 간주한 뒤 그 적립금을 정부가 한국은행에 이관하는 방식을 취했다(최초의 한국은행법 제4조). 그래서 한국은행은 정부가 출자한 납입자본금 15억 원과 가상의 적립금 3억 원을 합하여 총 18억원으로 출범했다.(본문 중)’

저자는 한국은행법이 1965년 일본과 타결한 대일 청구권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한다. 즉, 해방과정에서 조선은행이 한국은행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4억 원의 손실을 3억 원의 이익으로 둔갑시키면서 총 7억 원의 손실을 끼쳤다며, 이중 4억 원(현재가치 4조 원)은 대일청구권을 통해 받아냈어야 하는 돈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두고 “한은 선배들이 저지른 부끄러운 역사”라고 일갈한다.

저자는 1985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는 정통 한은맨이다. 최근에는 커뮤니케이션국장과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으며, 베스트셀러 ‘숫자 없는 경제학(인물과사상사, 2011년)’과 ‘금융 오디세이(인물과사상사, 2013년)’ 등을 저술한 한국은행에서는 보기 드문 글쟁이다.

그런 그가 최근 6년간 작업을 거쳐 내놓은 게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한국은행에 대한 비사(秘史)이자 정사(正史)다. 저자는 영문으로 ‘Monetary Board’가 ‘통화위원회’가 아닌 ‘금융통화위원회’로 명명된 이유, 한국은행은 영리행위를 할 수 있는 영리법인인지 아니면 비영리법인인지, ‘원’은 대한민국의 화폐단위인가 한국은행권의 이름인가 등 한국은행 직원들조차 쉽게 넘겨버리는 문제들을 한국은행법을 통해 파고들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한은법 제80조를 들어 가장 먼저 금융투자회사 등 영리기업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이도 바로 저자다. 그간 한은 관계자들은 한은법 제64조 금융기관에 대한 여신업무만을 들어 불가능하다고 밝혀왔었다.

저자는 한국은행법에 흠결이 많다고 지적한다. 한국은행법은 법률 초안부터 외국인의 손을 거쳐 제정된 극히 이례적인 법인데다, 그 법마저 법률가가 아닌 경제학자가 제정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행 한국은행법 114개 조문 중 삭제하거나 전면 수정해야 할 조문은 각각 26개(23%)와 37개(32%)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보완(26개·23%)하거나 운용방식을 개선(8개·7%)할 필요가 있는 조항도 상당수라고 봤다.

저자는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는 한국은행이 한국 사회에서 좀 더 기여하고 많은 일을 하도록 하려면 한국은행의 존재 양식과 행동 양식을 바꿔야 한다고 봤다. 이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신생독립국이었을 때 외국인이 가르쳐 준 유치한 조문과 우리 스스로 아무 생각없이 외국을 모방한 부문을 삭제하는 등 한국은행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특별히 조만간 선출될 제21대 국회의원들과 보좌 인력들에게 일독해 줄 것을 권하고 있다.

이 책은 대학에서 중앙은행론을 공부하는 학생들, 한국은행과 각국 중앙은행의 운영원리를 법률적 관점에서 살펴볼 경제학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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