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올 3월 초 시작된 사우디와 러시아 간의 유가전쟁으로 국제유가가 다시 급락한 지금 이런 비유는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저유가 때문에 재생에너지가 곤두박질칠 일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우선 지속적인 기술혁신에 힘입어 국제 재생에너지 기구는 올해부터 태양광·풍력 발전비용이 화석연료보다 낮아질 것으로 전망한다. 배럴당 유가 35달러 이하에서는 재생에너지가 수익률이나 안정성에서 석유 가스 개발사업보다 낫다는 에너지 컨설팅 기관의 분석도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저유가로 탐사·발굴에 불확실성이 크고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석유 가스 프로젝트의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가와 재생에너지는 상관관계 자체가 약하다는 것이 실증적으로 관찰됐다. 브렌트유가 배럴당 45달러를 찍으며 저유가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 2016년에도 전 세계 재생에너지 설비는 전년 대비 162GW 이상 늘면서 증가 폭이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석유가 주로 수송용 연료로 쓰이는 데 반해 재생에너지는 대부분 발전용으로 쓰인다. 그래서 유가가 떨어져도 재생에너지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 어렵다. 애당초 ‘저유가 크립토나이트’는 적절치 않은 비유였던 셈이다.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이후 재생에너지가 온실가스 감축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은 점도 중요하다. 단기적인 유가 변동에 상관없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가 늘어나는 구조가 확립된 것이다.
이런 변화에 눈뜬 석유 메이저들은 일찌감치 재생에너지 투자를 늘리고 있다. 북해에 조성된 네덜란드 최초의 108MW급 해상풍력 단지에는 쉘이 설치한 풍력발전기들이 상업운전 중이다. 2014년 프랑스 토탈은 미국의 모하비 사막에 당시 세계 최대인 700MW급 태양광 발전소를 지었다. 영국의 BP는 2023년까지 10GW 태양광 투자를 계획 중인데, 최근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는 석유를 팔아 번 돈으로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이 기업의 합리적인 선택이 되었을 정도로 시대가 변한 것이다. 다만 저유가가 재생에너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 해도 코로나19발 경기침체는 단기적인 글로벌 수요위축 등으로 우리 재생에너지 업계에 도전이 될 수 있다. 특히 공급과잉 상황에서 작년 한 해 동안 세계적으로 제조업체의 20%가 넘는 기업이 퇴출된 태양광 분야는 기업 간 인수ㆍ합병 등 구조조정 압력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저유가는 시차를 두고 한전의 전력구매가격(SMP)에 반영되는데 장차 이 가격이 떨어지면 주로 현물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소규모 발전사업자들의 수익성이 악화할 우려도 있다.
정부는 저유가에 따른 국내 업계에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장기적으로 글로벌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비한 경쟁력 축적에 힘쓸 계획이다. 우선 재생에너지 수출 동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필요할 경우 무역금융 등을 과감하게 지원할 것이다. 또한 올해 중 고정가격 계약을 대폭 확대하여 소규모 사업자들이 저유가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국내 업계에 든든한 내수시장을 제공하기 위해 올해 착공 예정인 대규모 재생에너지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되도록 인허가 과정에서의 애로사항을 밀착 지원하고 장기적으로 우리 업계가 세계시장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초고효율 태양전지, 부유식 해상풍력 등 수출 유망 분야의 R&D에도 집중 투자할 것이다.
과거 고유가에 고통받았던 우리 경제가 이번에는 정반대로 저유가로 인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석유의존 경제의 취약성과 예측 불가능성에 대비되는 재생에너지의 안정성과 성장 가능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와 저유가 상황에서 한화가 독일 큐셀을 인수해 세계적 태양광 업체로 성장할 기반을 닦았듯이 우리 재생에너지 업계는 어려움 속에서도 내실을 다지며 도약의 기회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도 우리 업계의 비상을 힘껏 돕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