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악화 이어 신용경색 '생존 갈림길'…적극 지원 시급"
중기 체감경기 전망 역대 최악…유럽 진출 기업 피해도 심각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생산과 투자 주체이면서 한국 경제의 근간인 기업이 위기에 직면했다. 이번 사태는 대기업,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이미 기업들의 실적치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문제는 현 상황에서 기업 부진으로 인한 경기침체의 바닥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팬데믹(pandemic: 세계적 전염병 대유행)’으로 번진 코로나19가 글로벌 경기를 바닥으로 이끌면서 기업들의 희망도 같이 끌어내리고 있다. 언제 이 악몽이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정부가 기업과 금융시장에 거대한 유동성을 공급, 위기상황을 버틸 힘을 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경기 회복이 언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경제 전문가들은 “기업이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 대기업 체감경기 ‘공포’…4월 BSI 전망치 25.1p↓로 금융위기 이후 최대 하락 = 대기업이 느끼는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 이미 3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실적치는 65.5로 2009년 2월 이후 13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향후 경기 인식은 더 암담하다. 30일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경기실사지수(Business Survey Index) 조사 결과를 보면 기업인이 느끼는 4월 전망치는 59.3에 불과했다. 세계 금융위기였던 2009년 1월(52.0) 이후 135개월 만에 최저치다.
BSI가 100보다 낮다는 것은 경기에 대해 부정적으로 응답한 기업이 긍정적으로 응답한 기업보다 많다는 의미다.
특히 BSI 하강 속도는 더 공포스럽다. 지난 금융위기 당시에는 총 5개월(2008년 9월~2009년 1월)에 걸쳐 46.3p 하락했지만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불과 두 달 만에 32.7p가 떨어졌다.
한경연은 "BSI 하강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기업이 느끼는 위기감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이동제약으로 소비가 위축된 데다가 조업 차질로 인한 공급 충격이 겹치면서 기업체감경기는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경제위기는 전염병이라는 비경제적인 원인으로 종식 시점이 불확실하므로 향후 체감경기가 얼마나 더 떨어질지 예상하기 어렵다"며 "외환위기는 외화유동성 부족에 따른 국내 경제체제 문제이고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위기 전이였다면 이번엔 국내와 세계위기가 결합한 복합위기"라고 강조했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코로나19로 기업들은 실적 악화에 이어 자금시장 위축으로 인한 신용경색을 겪으며 생존의 갈림길에 서 있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해 충분한 유동성 공급과 함께 피해업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4월 중소기업 경기전망, 전산업 통계 작성 이래 최저 = 중소기업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코로나19로 내수와 수출 부진이 겹치면서 중소기업들의 체감경기 전망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날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2020년 4월 중소기업경기전망조사'를 보면 4월 업황전망 경기전망지수(SBHI)는 60.6으로 전월보다 17.9p, 전년 동월보다 25.1p 각각 떨어졌다. 이는 2014년 2월 전산업 통계를 시작한 이후 역대 최저치다.
제조업의 4월 경기전망은 전월보다 8.0p 하락한 71.6으로 2009년 3월(70.5) 이후 최저치를 보였다. 비제조업 역시 서비스업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전월보다 22.9p 하락한 55.0으로, 조사 이래 최저를 기록했다.
2020년 4월의 SBHI와 최근 3년간 동월 항목별 SBHI 평균치와 비교해보면 제조업에서는 경기 전반, 생산, 내수, 수출, 영업이익, 자금 사정, 원자재 전망은 물론 설비·재고·고용 전망 모두 이전 3년 평균치보다 악화될 것으로 조사됐다. 비제조업 역시 모든 항목에서 악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됐다.
올해 2월 중소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69.6%로 전월과 전년 동월보다 각각 1.0%p, 2.8%p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 9월(69.5%) 이후 최저 수준이다.
◇ 유럽 진출 한국 기업 10곳 중 9곳 "코로나 피해 심각" =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폭발하고 있는 유럽에 진출한 기업의 피해도 상당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유럽 진출 기업 10곳 중 9곳은 코로나19로 심각한 피해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유형별로는 69%가 '현지 수요 감소로 인한 매출 하락'을 꼽았다. 이어 △딜러샵, 영업점 등 판매 채널의 영업 중단(58%) △물류ㆍ운송 애로(43%) △전시회 및 바이어 미팅 취소(39%)가 뒤를 이었다.
대부분 기업은 유럽 내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조사 대상 기업들은 코로나19의 예상 진정 시기로 △6월(43%)과 △5월(28%)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진정 시기별 예상 매출액 감소율은 △4월 10~20% △5월 20~30% △6월 30~40%로 코로나19가 오래갈수록 피해가 클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 기업은 정부에 가장 시급히 바라는 지원으로 '물류ㆍ운송 애로 해소'를 꼽았다. 또한 통관 애로나 한국과 유럽 간 출·입국 제한을 인한 기술인력 출장의 어려움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정부 역시 최근 기업과 금융시장에 총 100조 원 투입을 결정, 이달 13일 내놓은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 규모(50조 원)를 2배로 확대하는 강수를 뒀다.
코로나19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수준을 넘어 중견·대기업으로, 음식·숙박·도소매·서비스업과 항공, 관광 등 업종을 넘어 제조업 등 주력 산업으로 확산함에 따라 대응 범위와 규모를 대폭 키운 것이다.
다만 경제 전문가들은 기존 재정정책의 틀을 넘어서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국내 경기 부진으로 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금융시장 또한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까지 제한 없는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는 2008년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상황"이라며 "사태가 좀 더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면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규모 공공투자까지도 포함한 대응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미국의 경기부양 패키지는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준으로 100조 원은 우리 GDP의 5%가량이다"면서 "추이에 따라서 5% 이상의 지원이 필요하고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존 재정정책의 틀을 넘어 포괄적인 재정·금융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