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비롯해 영국과 프랑스 독일 스페인이 정부 재정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수십 조 달러 규모의 코로나19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고 17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세계 지도자들은 글로벌 경제에 대한 사상 초유의 위협에 맞서 전통적인 경제 플레이북(행동지침)을 저버리고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었던 벤 버냉키는 경제난을 극복하려면 헬리콥터에서 돈을 국민에게 살포해야 한다고 주장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동안 각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제로(0)나 마이너스(-) 수준으로 내리고 양적완화(QE)에 나서는 등 코로나19 대응 전면에 나선 반면 정부는 부채 급증이라는 부담에 재정을 풀어 경기를 지탱하는 ‘헬리콥터 머니’를 꺼렸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전 세계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끊기고 시장이 연일 요동치자 서구권 국가들이 드디어 ‘헬리콥터 머니’ 금기를 깨기 시작했다. 미국은 아예 현금 다발을 국민 개개인에게 안기는 ‘재난기본소득제’를 새로운 슈퍼 경기부양책의 핵심으로 삼으려 한다. 유럽은 코로나19로 망할 위기에 처한 기업 대출을 보증하는 일종의 ‘백지수표’를 제시하는 방식을 펼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특별 기자회견에서 국민 1인당 최소 1000달러(약 124만 원) 이상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초대형 부양책을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 정부가 2주 이내에 이런 재난소득으로 총 2500억 달러를 수표로 지급하고 이것으로도 부족하면 4주 후에 추가로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정에 밝은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당초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총 8500억 달러 규모의 종합 경기대책을 검토하고 있었지만 이제 그 규모가 1조2000억 달러로 늘어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므누신 장관과 함께 한 회견에서 “처음에 보좌관들이 국민 각자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헬리콥터 머니’를 반대했지만 고통에 처한 가계를 위한 즉각적인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고 그들을 설득했다”며 “부양책은 크고 대담할 것이다. 의회도 열의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럽 주요국들도 구체적인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영국은 이날 3300억 파운드(약 496조 원)의 긴급 대출 보증 계획을 내놓았다. 이는 영국 국내총생산(GDP)의 15%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또 소기업과 자영업자 등을 대상으로 200억 파운드의 재정지원도 펼친다. 리시 수낙 영국 재무장관은 “지금은 이데올로기나 정통성을 따질 때가 아니라 대담해져야 할 때”라며 “나는 무엇이든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정부는 450억 유로(약 61조4000억 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승인했으며 기업 대출을 대상으로 3000억 유로 규모의 보증을 제공한다. 또 기업 국유화를 불사하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독일은 최소 5000억 유로를 대출 보증할 계획이며 전염병 영향을 받은 기업에는 무제한으로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스페인은 2000억 유로 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는데 그 중 절반이 기업을 위한 긴급 대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