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수출 차질, 자금 경색 등의 위기에 직면한 산업계가 긴급 자금과 세제 및 고용유지 지원 등을 요청했다.
이러한 금전적인 지원을 호소한 기업이 10곳 중 6곳에 달해 코로나19로 존립 기반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평가다.
8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 가동한 ‘코로나19 대책반’에 접수된 기업 애로사항이 6일 기준으로 총 357건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대책반’은 대한상의 홈페이지와 전국 73개 지역상의, 서울의 25개 구별 상공회, 업종별 협회를 중심으로 기업현장의 피해와 애로사항을 접수받아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에 1일 단위로 전달하고 있다.
대한상의 코로나19 대책반장인 우태희 상근부회장은 “코로나19 사태로 매출감소·자금난 등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늘어나고 있어 정부 지원이 적시에 과감히 시행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기업 현장애로 해소를 위해서는 속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현재 대한상의는 대책반에 접수된 과제를 정부에 1일 단위로 전달해 후속조치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만간 코로나19 대응과 경제회복을 위한 제안을 담은 종합건의서를 별도로 마련해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라고 덧붙였다.
◇기업 “매출 감소가 가장 큰 어려움…자금지원 절실”=대한상의 대책반이 애로 사례를 분석한 결과, 기업들이 가장 많이 겪는 어려움은 ‘매출감소’(38.1%)로 파악됐다. 이어 ‘부품·원자재 수급’(29.7%), ‘수출애로’(14.6%), ‘방역용품 부족’(5.3%), ‘노무인력관리’(4.8%) 등이었다.
산업별로 보면, 제조업은 중국과 거래관계가 많고 공단·제조업 밀집지역인 경기·경남·경북 등을 중심으로 매출감소, 원자재 조달 애로를 호소하는 기업들이 많았다.
서비스업의 경우 코로나19 확산으로 생존까지 위협받는 상황으로 조사됐다. 외부활동을 꺼리고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도소매, 음식·숙박업 등 내수·관광업종을 중심으로 매출감소 폭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시산업과 항공운수업은 전시회 개최와 항공이용객이 90% 가까이 줄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외부활동 자제와 계속된 개학연기에 따라 소매유통업, 학원 등 업종의 타격도 컸다.
이에 기업들은 정부에 ‘자금지원’(35.1%)은 물론 ‘마스크·세정제 등 방역용품 지원’(18.8%), ‘세금감면·세무조사 연기 등 세제·세정지원’(13.4%), ‘고용유지지원’(10.9%), ‘노동·환경 등 규제완화’(6.4%) 등을 요청했다.
자금지원, 세제·세정 지원, 고용유지 지원 등 금전적 지원을 요청한 사항이 60%에 달할 정도로 많아, 코로나19 사태가 수출문제를 넘어 소상공인과 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역별로도 애로 및 건의 과제가 다르다. 제조업체 비중이 높은 인천·경기,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은 해외로부터 원부자재 조달 등과 관련된 애로가 많았다. 이에 비해 내수 및 관광관련 업종 비중이 전국 평균보다 높은 강원과 제주의 경우 관광분야 애로가 많았다.
코로나19 발생이 집중된 대구·경북지역에서는 생존을 위한 긴급자금 지원과 방역활동에 필요한 마스크공급, 관련비용 제공을 요청했다.
대구상의는 “대구지역의 중국거래 기업 중 47%가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며 “정부지원이 늘었다고 하지만 대출한도 초과, 대상업종 제한, 기업신용도 문제 등으로 신규대출이나 만기연장이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대구에서는 산업계 몫의 마스크를 배정받아 공급해 달라는 업계 요청이 많다”면서 “일반국민도 마스크를 구하기 힘든 상황은 이해되지만 기업에 마스크, 세정제 등 방역용품 공급이 이뤄져야 정상가동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요청했다.
◇기업 “‘위기의 도미노’ 막고 ‘정책간 조화’ 시급”=기업들은 코로나19로 촉발된 위기가 경제 전반에 영향이 확대되거나 장기화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호소했다. 코로나19로 해외바이어가 국내 입국을 꺼리거나, 해외출장길이 막혀 경영에 차질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정책간 조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분위기 속에서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재택근무, 원격근무, 돌봄휴가 확대 등 다양한 근무형태를 도입하고 있는 만큼, 생산성 감소를 보완하기 위해 ‘특별연장근로’ 인가를 확대해야 한다는 요청도 있다.
경북에 위치한 한 전자업체는 “회사내 코로나 확진자 발생으로 다수 근로자까지 격리조치. 전문성 요구되는 업무라 임시직 대체 어려워 기존 인력들이 업무 나눠 해결하고 있지만 정규시간내 소화가 어렵다”며 “최근 코로나 사태로 초중고 개학이 연기되면서 ‘가족돌봄휴가’ 수요가 증가할 것인데 특별연장근로 인가가 확대된다면 생산성 제고와 제도 안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정부 대책이 나왔지만 실제로 기업이 지원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지원요건 허들이 높은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실제로 까다로운 피해입증 기준과 업종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추진으로 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학교에 식자재 납품하는 부산 소재의 요식업체는 개학이 연기돼 3월 매출에 큰 타격이 있어, 긴급경영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문의했으나 매출이 없으면 기업활동이 없는 것으로 본다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서울에 있는 렌터카 업체는 업종 특성상 제1금융권 이용이 어려운데, 금융지원 정책은 제1금융권에 국한돼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상황이다.
대한상의 자문위원인 신관호 고려대 교수는 “기업은 총체적 위기에 빠져 한시가 급한데 지원절차가 복잡하고 심사기준이 예전과 같다면 체감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지역·업종별 대책 외 자금지원, 세제감면, 각종 조사·부담금 납부 이연 등 모든 기업에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부담경감조치는 한 번에 묶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