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는 산업지도 그리고 금융시장 지도를 바꾼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극한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 금융시장에는 또 어떤 태풍을 몰고 올까. 작금의 마스크 대란이 보여주고 있듯 소비자들의 심리적 동요 자체가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극단적으로 높아진 상황에서 어떠한 변화를 이끌지 섣부른 상황 인식조차 조심스럽다. 이달 초 코로나19가 중국에서 한국과 일본으로 번질 때만 해도 글로벌 금융시장은 담담했다. 그러나 한 주가 지나 이탈리아에서 집단 발병한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과 유럽증시가 급락하기 시작했다. 금과 함께 안전자산 가운데에서도 가장 안전하다고 손꼽히는 미국 국채 금리는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급기야 지난달 28일 코스피지수 2000선이 무너졌다. 이날 다른 아시아 주요국 증시도 비슷했다. 중국의 선전종합지수는 전장보다 4.93% 내린 채 거래를 끝냈고, 상하이종합지수는 3.71% 내렸다. 일본의 토픽스 지수와 닛케이 225 지수는 각각 3.65%, 3.67% 하락했다. 호주 ASX 200 지수는 3.25% 떨어졌다. 모두 미국 증시 폭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1190.95포인트(4.42%) 하락한 2만5766.64에 거래를 마쳤다. 포인트 기준으로만 단순 비교하면 다우지수 120년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인 1987년 ‘블랙 먼데이’(Black Monday)보다도 큰 역대 최대 낙폭이다. 당시 다우지수는 2200선에서 1700선으로 508포인트(22.6%) 내렸다. 아시아, 유럽에 이어 미국 본토까지 코로나19가 지역사회에 전파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급락세를 보였다.
안전자산이라고 할 때 미국 달러가 먼저 꼽힌다. 금도 전통적 안전자산이다. 안전자산 개념에는 통상 유로화도 포함된다. 다음이 일본 엔화다. 안전자산 대열에 들어갔던 엔화가 최근 맥을 못 추고 있다. 통상 일본은 선진 금융시장으로 분류되지만 코로나19 사태에서만큼은 지위가 상실돼 엔화 자산이 급하강하고 있다. 지난달 마지막주 미국 달러 대비 2% 이상 가치가 떨어졌다. 10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다. 엔화는 통상 글로벌 경제가 출렁거릴 때마다 강세를 보여왔지만 이번 사태에서는 예외적인 모습이다. 일본도 코로나19 감염자가 많아 이번 사태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안전자산의 차별화를 촉발하면서 ‘진짜 안전자산’이 가려지는 것 같은 분위기도 있다.
코로나19 확산과 이에 따른 경기 둔화 우려로 기준금리 인하도 관심이 큰 대목이다. 앞서 소비자들과 기업인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소비자동향지수(CSI)와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가장 먼저 급락했다. 기준금리를 내려야 하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 창궐했을 때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전격 인하했다. 그해 4월29일 국내 첫 사스 추정환자가 발생하자 5월13일에 한은은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4.25%에서 4.00%로 내렸다. 5월 20일 메르스 첫 확진환자가 나오자 6월 11일에 1.50%에서 1.25%로 낮췄다.
그러나 현재의 기준금리 1.25%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한 번에 25bp씩 내린다면 0%까지 총 5차례 인하 여력이 있다. 그러나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가 마이너스 또는 0%까지 금리를 낮출 수는 없다. 자본 유출을 감안해 이른바 실효 하한을 고려해야 한다. 대략 0.75%나 1.00%가 낮출 수 있는 기준금리의 마지노선이다. 문제는 기준금리 인하로 발생되는 부작용이다. 넘치는 유동성, 초저금리로 인한 금융시장 후폭풍, 무엇보다 부동산 문제가 핵심이다. 수많은 규제 정책으로 묶어놓은 부동산 가격이 기준금리 인하로 다시 들썩일 수 있기 때문이다. ac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