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중국인은 마스크 싹쓸이, 한국인은 외출 자제령…'우한폐렴'에 부산한 명동

입력 2020-01-28 17:11 수정 2020-01-28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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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외부 미팅 자제"ㆍ대학 "한국어학당 휴강"

▲28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한 중국인 관광객 가족이 구입한 마스크 상자를 유모차에 매달고 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28일 서울 중구 명동에서 한 중국인 관광객 가족이 구입한 마스크 상자를 유모차에 매달고 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28일 정오께 서울 중구 명동. 이곳은 지금 '우한 폐렴'을 앓고 있다. 관광객이 몰리는 명동에서는 중국인들이 자국에서 부족한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약국에서 줄을 서고, 불특정 다수와 접촉할 수밖에 없는 의류ㆍ화장품 매장 직원들은 혹시 모를 감염에 대비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국내에서 우한 폐렴 확진자가 4명으로 늘자, 시민들은 명동처럼 사람이 많이 몰리는 지역으로 나오기를 꺼리고 기업들은 중국 출장 직원에게 재택 근무를 권고하는 상황이다.

▲화장품 매장 직원이 행인에게 얼굴 팩을 나눠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인은 남이 주는 물건을 받지 않았다. (홍인석 기자 mystic@)
▲화장품 매장 직원이 행인에게 얼굴 팩을 나눠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인은 남이 주는 물건을 받지 않았다. (홍인석 기자 mystic@)

◇뒤도 안돌아보고 '쌩~'…길거리 광고지ㆍ선물 외면해

매장이 즐비한 명동의 초입에 들어서자, 늘 그렇듯이 화장품 매장 직원들이 광고지와 선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날 만큼은 전단지를 받는 사람이 드물었다. 대다수 행인은 이들을 외면한 채 갈 길을 재촉했다. 평소 같으면 인기가 많았을 공짜 얼굴 팩에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한 화장품 매장 직원은 "며칠 전부터 받아가는 사람이 확 줄었다"라고 귀띔했다. 이어 "우한 폐렴이 전염병이어서 모르는 사람 손에 들려 있는 물건을 가져가려 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얼굴 팩은 관광객에게 인기 많은 상품인데, 오늘은 완전히 찬밥신세"라고 설명했다.

일본 도쿄에서 왔다는 관광객 사토 타케노야(22) 씨는 "우한 폐렴이 중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 중에 중국 사람이 많다고 하는 데, 될 수 있으면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라고 답했다. 그는 "맨손으로는 물건도 집지 않을 생각"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명동의 한 화장품 가게 한편에 마스크 상자가 수북이 쌓여있다. 원래는 판매하지 않던 품목이다. (홍인석 기자 mystic@)
▲명동의 한 화장품 가게 한편에 마스크 상자가 수북이 쌓여있다. 원래는 판매하지 않던 품목이다. (홍인석 기자 mystic@)

◇화장품 매장은 마스크 마케팅에 부산…안경점은 보호안경 특수

이날도 마스크를 사기 위한 중국인 관광객으로 약국은 북새통을 이뤘다. 약사는 기자가 묻는 말에 대답할 새도 없이 현금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기 바빴다. 이들 중국 관광객은 자국으로 돌아갈 것을 대비한 듯,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히 많은 양의 마스크를 사재기하고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화장품 매장으로 들어가는 대량의 마스크 상자였다. 우한 폐렴으로 마스크 수요가 늘자 일부 화장품 매장은 마스크를 들여 놓고 중국인 관광객에게 적극 알리고 있었다. 마스크 열풍을 이용해 관광객을 매장으로 유인하고 있는 것.

한 화장품 매장 직원은 "본사 차원에서 마스크를 넣으라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짧게 답했다. 명동에 있는 해당 화장품 브랜드 3개 매장은 모두 마스크를 들여 놓았고, 직원들은 매장 전면에 마스크를 진열하느라 부산해 보였다.

안경점에서는 보호안경 문의가 부쩍 늘었다. 바이러스 전염이 피부가 아닌 눈과 코, 입에 있는 점막에 취약하다는 정보 때문이다. 명동의 한 안경가게 직원은 "안경을 안 쓰는 사람도 보호안경 가격을 물어볼 정도로 관심이 커졌다"면서 "아마도 감염자의 타액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히, '외국인 영어강사가 우한에서 보내는 영상'이 화제가 된 뒤부터 '수영 안경'을 찾는 사람까지 생겼다. 해당 영상에서 남성 외국인 영어강사는 각막 전염을 막기 위해 수영 안경을 착용했다. 유튜브 조회 수 280만 건을 기록한 이 영상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회자됐고, 그 뒤로 수영 안경을 찾는 문의가 심심치 않게 온다는 게 현장 직원의 설명이다.

▲자신을 우한에 살고 있다고 소개한 남성 영어강사가 외출 전 수영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해당 영상은 280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출처=유튜브 캡처)
▲자신을 우한에 살고 있다고 소개한 남성 영어강사가 외출 전 수영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해당 영상은 280만 건의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출처=유튜브 캡처)

◇마스크 무장한 매장 직원…기업들 "중국 출장 직원은 집으로"

명동에서 근무하는 의류, 화장품 매장 직원들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듯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했다. 보통 매장에서 손님을 응대하는 직원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 의사소통에 방해될 수도 있기 때문. 그러나 현재 우한 폐렴 의심환자가 늘고, 손님들도 위생에 신경 쓰고 있는 만큼, 본사에서 마스크 착용을 권고했다고 한다.

한 의류 매장 직원은 "직원과 손님 모두를 위해서 착용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 직원들의 건강을 지키고, 손님들도 안심하고 직원들과 대화 나눌 수 있게 하려는 조처"라고 말했다.

▲매장 직원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결제를 하고 있다. 손 세정제도 갖춰져 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매장 직원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결제를 하고 있다. 손 세정제도 갖춰져 있다. (홍인석 기자 mystic@)

명동 소재의 일부 기업은 직원들에게 '외출 자제령'을 내렸다. 가급적 식사는 사무실에서 하고, 개인위생에 신경 쓰라는 내용을 사내 메시지로 전파했다. 명동 거리에 되도록 나가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뿐만 아니라 명절과 그 직전, 중국에 다녀온 직원들에게 2주간 재택근무 지침을 내린 곳도 있다. 이날 점심시간에 식당과 길거리에 직장인이 많이 보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어학당 휴강합니다" 우한 폐렴에 대학가도 초비상

우한 폐렴이 빠르게 확산하면서 중국인 유학생이 많은 서울 소재 대학교도 비상이 걸렸다. 먼저, 경희대ㆍ고려대ㆍ성균관대의 국제교육원과 한국어학당, 한국어센터가 이날부터 휴강에 들어갔다. 이들 대학은 중국인 유학생 비율이 높은 곳이다. 몇 대학은 사태를 지켜보고 추가 휴강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숙사에 거주하는 대학생들도 관련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대학교들이 겨울방학에 돌입했지만, 기숙사에 거주하는 학생들도 있는 상황.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유학생들이 한 공간에 거주하고 있어 마음을 놓을 수 없다고 호소했다.

서울의 한 대학교에 다니는 이소정(22ㆍ가명) 씨는 "기숙사에 손 세정대가 갖춰졌고, 우한 폐렴에 관한 공지문이 붙기는 했지만, 중국인 유학생의 수가 많아 자주 접촉할 수밖에 없다"면서 "우한 폐렴이 확산하지 않도록 교육부나 보건복지부가 조속한 대책을 발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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