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 업계가 자신들이 강점을 보였던 소형차 시장이 둔화하면서 비상사태에 빠졌다.
세계 2위 규모인 미국 시장의 주류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등 대형차로 이동하고 신흥국의 소득수준이 향상하면서 글로벌 소형차 수요가 한계점에 도달했다. 이에 일본 업체들이 최근 잇따라 소형차 분야에서 해외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고 12일(현지시간)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보도했다.
혼다는 오는 2021년 미국에서 소형차 판매를 중단하는 한편 동남아시아 등에서는 차종을 줄일 계획이다. 닛산도 신흥국에서 소형차 브랜드를 축소하는 등 일본 업체들은 현재 ‘선택과 집중’을 강요당하는 상태라고 닛케이는 지적했다.
공간이 제한되는 소형차는 부품 배치 등의 설계가 어렵다. 그만큼 일본 업체들은 강한 기술력을 배경으로 이 부문을 지배해왔다. 영국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소형차 판매 대수는 2415만 대였는데 일본 업체가 40% 점유율을 차지했다. 신차 전체에서 일본 비중이 약 30%라는 점을 감안하면 소형차에 강점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연평균 10% 가까운 성장이 계속됐던 글로벌 소형차 시장은 2010년대에는 보합세로 성장이 멈췄으며 앞으로도 잘해야 소폭 증가에 그칠 전망이다.
이에 혼다는 주력 소형차인 ‘피트’ 신모델을 2월 일본에서 출시하지만 미국과 동남아에서는 출시를 미루고 현행 모델 판매도 2021년에는 끝낼 계획이다. 또 미국 시장에서 소형 SUV인 ‘HR-V’도 내년 전면 개량하면서 대형화한다. 미국 시장은 SUV나 픽업트럭 등 대형차가 지난해 신차 판매의 약 70%를 차지했다. 혼다도 미국에서 피트 판매가 3만 대, HR-V는 9만 대에 그쳤지만 중형 SUV ‘CR-V’는 38만 대가 팔렸다.
신흥국 시장에서도 소비자들의 소득수준 향상으로 저가인 소형차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해 미국에서 판매하는 소형차 ‘야리스 해치백’을 마쓰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공급으로 전환, 미국 소형차 자체 생산을 아예 중단했다.
닛산도 자사 소형차 개발을 축소하는 대신 파트너인 르노와 미쓰비시자동차와의 협업으로 이를 대신할 계획이다. 소형차 중심의 신흥국 브랜드 ‘닷슨’은 러시아와 동남아 시장에서 철수한다.
자율주행과 전기자동차 등 차세대 기술의 부상도 소형차 입지를 갈수록 좁게 하고 있다. 미국과 동남아에서는 우버테크놀로지와 그랩 등 차량공유 업체들의 서비스가 확산하고 있다. 카와노 요시아키 IHS 오토모티브 애널리스트는 “소비자에게 단순한 이동은 차량공유로 충분하다”며 “구매한다면 취미 성격이 강한 고급차를 선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채산성에서도 소형차는 중대형차를 따라잡지 못한다. 혼다는 지난해 보고서에서 중대형차 중심인 ‘경트럭’ 부문의 대당 매출총이익은 전체 대비 평균 약 35% 높았지만 세단과 소형차가 속한 ‘승용차’ 부문은 약 20% 낮았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차세대 기술이 상용화하면 소형차는 수익성이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자동 브레이크 등의 안전 지원 기능과 고가의 배터리를 탑재하는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지만 소형차는 마진이 제한돼 있어 이런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