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 KB증권 등 발행어음(단기금융) 인가를 받은 초대형 투자은행(IB) 3사의 발행어음 잔고가 지난해 12조 원을 돌파했다. 연간 목표치를 추월하는 발행어음 성과로 3강 구도를 굳혀 가고 있지만 후발주자인 ‘발행어음 4호 사업자’의 윤곽은 희미한 상황이다. 지난해 자본 확충으로 단기금융업 자격 요건을 갖춘 신한금융투자가 4호 물망에 올랐지만 라임자산운용의 ‘폰지사기’ 의혹에 연루되면서 연내 인가 가능성이 희박해졌기 때문이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발행어음 1호’ 증권사인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말 기준 발행어음 잔액이 약 6조7000억 원(원화ㆍ외화 합산)으로 연간 목표치(6조 원)보다 7000억 원가량 웃도는 실적을 기록했다.
이와 함께 ‘2호 증권사’인 NH투자증권도 발행어음 잔고가 약 4조800억 원으로 목표치인 4조 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5월 인가로 3강 구도의 한 축이 된 KB증권 역시 약 2조1050억 원을 달성하며 목표치(2조 원)를 추월했다.
이에 따라 3사의 지난해 발행어음 잔고는 약 12조8850억 원으로 13조 원 돌파도 목전에 둔 상태다. 2018년 말 기준으로 한국투자증권(3조7000억 원), NH투자증권(1조7000억 원)의 연간 발행어음 잔고 총합이 5조4000억 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 발행어음 규모가 2배 이상 커진 셈이다.
2016년 8월 초대형 IB 육성을 위한 종합금융투자사업자 제도 개선 방안이 발표되면서 초대형 IB 시대가 열렸다. 금융위원회는 2017년 자기자본 4조 원 이상 조건을 갖춘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5개 업체를 초대형 IB로 지정했다. 또 초대형 IB로 지정된 경우 자기자본의 2배까지 단기어음을 발행할 수 있는 발행어음 신청 권한을 줬다. 발행어음 사업권을 가지면 경쟁사 대비 자금 조달 능력이 비약적으로 커진다.
최근 4호 사업자로 가장 유력한 곳은 신한금투였다. 신한금투는 지난해 7월 6600억 원 유상증자에 나서면서 자기자본 규모 4조 원을 넘어섰다. 이에 초대형 IB 인가를 받고 발행어음 사업권까지 얻는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근 금융당국은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 폰지사기(다단계 금융사기) 혐의에 신한금투도 가담했을 가능성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의 제재에 이어 검찰 수사까지 이뤄지면 초대형 IB로 지정된다 해도 발행어음 인가는 요원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신한금투는 이와 별개로 발행어음 시장 진출 시기를 조율 중이라는 설명이다. 신한금투 관계자는 “저금리 시대에 3사가 먼저 진출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현 구도에서 발행어음으로 큰 이익을 얻긴 어렵다고 본다”며 “금융당국의 조사와는 별개로 발행어음 시장에 진출하기 적절한 때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초대형 IB임에도 단기금융 사업권이 없는 미래에셋대우와 삼성증권도 발행어음 진출이 힘든 상황이다.
국내 자기자본 규모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 몰아주기 제재 절차에 착수하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공정위는 내달께 전원회의를 거치고 미래에셋대우에 대한 검찰 고발 여부와 제재안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대우 관계자는 “공정위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발행어음 인가 절차를 미뤄둘 수밖에 없다”며 “결과가 좋다면 절차를 서두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삼성증권의 경우 2018년 4월 110조 원가량의 배당 사고로 내년 1월 26일까지 신사업 인가를 받을 수 없어 연내 발행어음 인가가 불가능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