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는 흔히 부부관계에 비유된다. 부부간의 문제는 부부 스스로가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사안에 따라서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가족회의’를 통해서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해결하거나 그것도 어려우면 외부인이나 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노사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근로자와 사용자 사이에 임금 등 근로조건의 변경을 둘러싸고 이해관계가 상충할 때 외부기관에 의존하기보다는 당사자 스스로가 해결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문제는 당사자 사이에 의견이 대립하는 경우인데, 이럴 때에 대비하여 ‘가족회의’에 해당하는 ‘집단적 동의 규정’을 1989년 근로기준법 개정 시 도입한 바 있다. 다시 말해서 위의 ‘집단적 동의 규정’은 근로자 개인과 사용자 간의 이해충돌과 갈등을 조정할 툴(tool)로써 도입한 것이다. 이를 ‘노사자치’또는 ‘협약자치’라고 하며, 노동법에서 가장 존중하는 가치 중의 하나다. 노동운동의 역사가 가장 오랜 영국이 지금까지 ‘노사자치(율)주의(voluntarism)’의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위 대법원 판례는 일견 개별적 권리보호에 방점을 둔 것처럼 보이나, 노사 자치의 원칙을 무력화시킬 위험이 있다. 이는 마치 부부간의 문제를 가족회의를 통해 갈등을 조정한 다음, 또다시 부부 당사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이상한 논리가 된다. 또한 이는 집단적 동의 규정을 도입한 입법 취지에도 맞지 않다. 대법원이 이런 법리를 관철하려면, 종전의 해석대로 하거나 아니면 아예 집단적 동의 규정을 삭제하는 것이 옳다. 그러지 않고 집단적 동의에 더해 개별적 동의까지 요구하게 되면 노동력 활용에 대한 유연성이 떨어져 노동환경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이러한 노동문제의 ‘사법화 현상’은 특히 최근 수년 사이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통상임금의 산정범위를 둘러싼 문제를 비롯하여, 근로시간의 산정 문제, 경영성과급에 대한 임금(성) 판단 문제 등등 그러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사실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상당수는 임금이나 근로시간 산정 등과 같이 사법부의 판단을 받지 않더라고 노사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는 시시콜콜한 것들이다. 이런 사안들은 노사가 자기 사업장의 사정을 고려하여 결정하면 되는 것이지, 굳이 법적 판단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노동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지나친 개입은 노사 자치의 근본을 붕괴시킬 수 있기 때문에 필요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사법부의 판단은 분쟁을 종국적으로 종식시킨다는 의미에서 물론 의의가 있다. 그러나 고용환경은 매우 가변적이기 때문에 고정적이고 일도양단적인 판단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노사 간의 문제는 명확하게 실정법 또는 사회상규에 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노사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지 않고 노사 간에 분쟁이 생길 때마다 사법적 판단에 의존하는 것은 효율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안정적 노사관계 형성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