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가 부른 ‘광화문 연가’에는 정동길, 교회당, 덕수궁 돌담길이 등장한다. 광화문 네거리에서 정동교회까지 연인과 거닐던 흔적에 대한 향수가 담겨 있다. 광화문 연가는 작곡가 이영훈이 1988년 작사ㆍ작곡했다. 세월이 지나도 좋은 노래는 다시 소환된다. 뮤지컬 ‘광화문 연가’로 무대에 올랐고, 추억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배경음악으로 흘렀다.
광화문 연가에 나오는 눈 덮인 예배당이 정동제일교회(사적 256호)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19세기 교회 건물로, 붉은 벽돌 예배당이 인상적이다. 음악회와 성극 등 신문화가 이곳에서 소개됐고, 1918년에는 한국 최초로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됐다.
교회 건너편에 이영훈의 노래비가 있다. 2008년 세상을 떠난 천재 작곡가를 기리며 이듬해 노래비를 세웠고, 이문세는 노래비 제막식이 열린 정동로터리 길목에서 광화문 연가를 불렀다. 마이크 모양으로 만든 노래비에는 ‘붉은 노을’, ‘옛사랑’,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소녀’ 등 이영훈이 만든 노래와 그를 추모하는 글이 담겼다. 비문에는 “영훈 씨의 음악들을 기억하기 위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당신의 노래비를 세웁니다”라고 쓰여 있다.
광화문 연가 노랫말처럼 ‘모두 흔적도 없이 변하’는 세월 속, 덕수궁 돌담길과 정동길에는 사라진 것과 남은 것, 새로 생긴 것이 공존한다. 호젓한 돌담 내부길이 개방됐고, 빛바랜 건물은 용도를 바꿔 새롭게 문을 열었다. 시간이 흘러 옛 거리를 다시 걸어도 그리움은 변색돼 다가선다.
광화문 연가 여행은 광화문 네거리에서 덕수궁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사연을 더한다. 국세청 남대문 별관 건물을 철거한 자리에 올봄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 개관했다. 지상 1층 높이에 지하로 연결된 전시관은 덕수궁 돌담과 어깨를 맞췄고, 가려진 성공회 서울성당의 전경을 열었다. 전시관에는 시간을 넘어선 서울의 동네와 건축물 모형을 전시 중이다. 이곳에서 덕수궁과 정동길 주변의 옛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성공회 서울성당 옆으로 덕수궁 돌담 내부길이 무료로 개방됐다. 영국대사관에 막혀 있던 길이 지난해 열려, 덕수궁을 한 바퀴 돌아 산책하기 좋다. 돌담 안쪽을 걸으며 궁내 풍경을 엿볼 수 있고, 호젓한 데이트 코스로도 운치 있다.
돌담길 산책로를 벗어나면 골목은 구세군중앙회관으로 빠르게 연결된다. 근대건축물인 구세군중앙회관(서울시 기념물 20호)은 올가을 복합 문화공간 ‘정동1928아트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갤러리와 공연장, 예술 공방을 갖췄으며, 1층에는 고풍스런 카페가 들어섰다. 정동1928아트센터를 나서면 옛 러시아공사관이 있는 정동공원까지 ‘고종의길’이 이어진다. 1896년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궁을 떠나 걸은 길이다.
광화문 연가의 주요 배경인 정동길에는 낙엽 떨군 가로수 아래 향수가 묻어난다. 사라진 건물에 대한 사연이 길 곳곳에 녹아 있다. 정동 일대에는 1883년 미국공사관을 시작으로 영국, 독일, 프랑스 등 각국 공사관이 건립됐고, 서양식 건물도 함께 들어섰다. 이화여고 터에는 대한제국 시기 서구식 호텔인 손탁호텔, 최초의 여성 병원인 보구여관 등이 있었다. 고종은 손탁호텔에서 경운궁(덕수궁) 정관헌으로 커피를 주문해 다과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아담한 찻집, 정동극장 등은 이 길에서 만나는 회상의 오브제다.
정동극장 뒤쪽에 왕실 도서관으로 사용된 중명전이 숨어 있다. 을사늑약이 체결된 아픈 과거가 담긴 곳이다. 정동제일교회에서 이어지는 서울시립미술관, 배재학당역사박물관 등도 정동길이 선사하는 소소한 산책 코스다.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3층 정동전망대에 오르면 광화문 네거리 일대가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덕수궁과 돌담길의 윤곽도 이곳에서 선명하다. 전망대에서 정동 일대의 옛 사진을 전시 중이며, 커피 향과 더불어 추억에 잠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