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족이 최근 들어 유통가의 큰손으로 떠오르면서 백화점 업계가 남성 소비자에게 주목하고 있다. 그루밍(grooming)족은 패션과 미용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남성들을 뜻하는 신조어다.
과거에 남성은 패션 구매력이 떨어지는 고객으로 분류됐지만, 최근 몇 년 새 매출 성장세는 매섭다. 백화점 업계는 남성 취향을 저격할 다양한 브랜드를 들여와 이들을 공략한다는 계산이다.
갤러리아백화점은 신규 브랜드 수입 사업으로 70년 전통의 아이비리그 프레피룩 대명사 ‘간트’의 판권을 획득했다고 3일 밝혔다. 30·40대 비즈니스 캐주얼 브랜드인 ‘간트’는 이 회사가 처음으로 진행하는 트래디셔널 캐주얼 수입 브랜드다.
갤러리아는 ‘간트’의 남성 라인을 들여와 내년 2월 개장하는 광교점을 시작으로 3월에는 대전 갤러리아백화점 타임월드점에 열 예정이다. 내년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최대 7개 매장을 오픈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기존 해외 판권 브랜드의 유통망 확장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해 프랑스 명품 브랜드 ‘포레르빠쥬’ 판권을 획득한 데 이어 이달 중순에는 2008년부터 압구정 명품관에서만 선보이던 이탈리아 남성 정장 브랜드 ‘스테파노리치’를 롯데백화점 본점에 열기로 했다.
갤러리아 관계자는 “3월 패션 사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글로벌 패션사업부’를 신설해 독립 조직 체계를 정립하면서 브랜드 사업 기반을 구축했다”면서 “글로벌 패션 브랜드 판권 확대와 기존 판권 브랜드 출점 등 패션 사업부문의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백화점도 최근 남성복 브랜드 유치에 집중하고 있다. 2월 영국 브랜드 ‘바버(barbour)’를 시작으로 ‘APC옴므’, ‘산드로옴므’, ‘송지오옴므’를 연이어 오픈했고, 9월에는 ‘우영미(WOOYOUNGMI)’ 단독 매장을 오픈했다. 특히 백화점 최초로 단독 매장을 선보인 ‘우영미’는 오픈 첫날에만 1000만 원의 실적을 기록했고, 한정판으로 선보인 코트는 오픈 3시간 만에 완판되며 남성 고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분더샵(BOONTHESHOP)’ 등으로 이미 남성 패션 마니아들 사이에서 성지로 꼽히는 신세계는 8월 강남점 신관 7층에 ‘스타일 컨템포러리 맨(style contemporary men)’을 론칭했다. 기존 편집숍이 해외 패션 브랜드를 중심으로 구성했다면, 이 매장은 순수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로 구성해 다양성을 높였다. 신세계가 국내 남성 캐주얼 브랜드만으로 구성한 편집숍을 선보인 것은 이 매장이 처음이다.
백화점 업계가 남성 의류 브랜드 유치에 힘을 주는 이유는 남성 소비자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매출 증가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백화점의 여성복 매출 비중은 2010년대 초반 25% 내외 수준에서 지난해 20.5%로 떨어졌고 올해 들어서는 10%대 후반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이에 비해 남성 의류 매출 비중은 꾸준히 6~7%대를 유지하고 있다.
백화점의 남성복 매출 상승세는 더욱 뚜렷하다. 롯데백화점의 남성 럭셔리 캐주얼 카테고리 매출 신장률은 2016년 7.8%에서 지난해 10.7%로 치솟았고, 올해 상반기에는 13.2%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역시 1~2%대에 머무는 여성 장르 매출 신장률과 달리 남성 장르 매출 신장률은 10% 내외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젊은 남성 고객을 모시기 위한 백화점들의 노력은 패션을 넘어 화장품으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자체 화장품 매장 ‘시코르’의 홍대점을 오픈하면서 20대 남성 고객을 타깃으로 한 ‘그루밍 존’과 ‘그루밍 바’를 내놨다. ‘그루밍 존’은 남성 브랜드를 한곳에 모은 코너를 의미하고, ‘그루밍 바’에서는 남성 고객들이 화장품을 체험할 수 있다.
안승호 숭실대 교수는 “주 52시간 근무에 따라 여가시간이 많아지면서 남성들도 자신의 외모와 패션에 신경 쓰기 시작하고 있다”면서 “(고급 남성 브랜드 외에도) 일상복까지 다양한 남성 관련 분야로 업계의 관심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