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 SUV에 배기량 1.7리터 디젤 엔진이 어울리느냐는 별개의 문제가 됐다.
이미 추세가 작은 엔진 쪽으로 발 빠르게 옮겨갔다.
자동차 크기, 특히 ‘배기량’만큼은 변화를 거부해온 우리의 독특한 자동차 문화 탓에 새 모델이 낯설 뿐이다.
QM6 1.7 dCi는 이전 2.0 dCi의 배기량을 줄이고 연비를 뽑아냈다. 공인 복합연비는 리터당 14.4㎞에 달해 국내 중형 SUV 가운데 단연 최고 수준이다.
물론 엔진이 가벼워지면서 편의 장비 일부를 덜어내고 가격도 낮췄다. 멀찌감치 머물러 있던, 다분히 비싼 차라는 인식이 뚜렷했던 QM6는 단박에 사정권 안으로 들어왔다.
새 모델은 ‘다운사이징’ 추세를 뒤따르는 동시에 ‘라이트 사이징’ 전략을 고스란히 갖췄다. 이전 직렬 4기통 엔진의 스트로크를 조절해 배기량을 줄이고 연비를 끌어올리는 제품 전략이다.
국내에 첫선을 보였지만 새 엔진은 르노의 ‘블루 dCi 200’ 계열 엔진이다. 현행 QM6 2.0 디젤 엔진과 블록을 포함해 큰 틀에서 같은 엔진이다.
다만 새로운 배기가스 규제(WLTP)를 염두에 두고 연비를 올리기 위해 내놓은 새 블록(블루 dCi 150)이다.
배기량 1.7을 강조했으나 엄밀히 따져 1.7리터와 1.8리터의 사이(1749cc)에 머물러 있다.
우리처럼 1600cc와 2000cc를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게 아닌, 출력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유럽에서는 이런 배기량이 익숙하다.
새 엔진은 2.0 dCi의 스트로크를 줄이고 구석구석 마찰효율을 끌어올려 연비를 뽑아냈다.
내구성이 검증된 2.0 디젤 엔진에서 마찰을 줄이고, 그나마 뿜어져 나오던 열까지 바깥으로 충직하게 뽑아낸 만큼, 오래 타도 매끄러움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솟구친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대시보드 저 너머에서 아득한 디젤 엔진 소리가 피어오른다. 새 모델부터 겹겹이 차음재를 덧댄 까닭이다.
시프트 레버를 D로 옮기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면 가볍게 정지상태를 벗어난다.
초기 출발 때 경쾌함은 디젤 엔진의 특성 그대로다.
7단 CVT는 좁은 회전수 영역에 최적화됐다. 가ㆍ감속을 반복할 때마다 바쁘게 최적의 기어를 갈아탄다.
최대토크 영역은 2.0 dCi에 비해 비좁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CVT는 7개로 쪼개놓은 변속 포인트를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바쁘게 움직인다.
낮은 회전 영역에서 최대토크가 뿜어져 나오는 만큼, 굳이 고회전까지 회전수를 끌어올릴 필요가 없다. 애써 기어봉(시프트 레버)을 고집스럽게 붙잡고 어설프게 고회전을 유지하다간 뒤차에 가볍게 추월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변속기를 매뉴얼 모드로 바꾸고 회전수 2500rpm 근처에서 레버를 툭툭 쳐올리면 의외로 스트레스 없는 달리기가 가능하다.
다만 CVT의 특성상 ‘킥다운’ 때 기어비를 2단계씩 건너뛰는 이른바 ‘스킵 시프트’는 없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충직하게 기어를 갈아탄다. 급가속 때 차가 경박스럽게 반응하지 않는 것도 과격함을 상쇄하는 변속기 덕이다.
2.0 디젤과의 차이점을 꼽아보자면 추월 가속 때 반 박자 느리다는 것. 이를 제외하면 초기 출발과 고속 순항 모두 매끄럽고 한결 여유롭게 달릴 수 있다.
오히려 2.0 디젤보다 엔진 스트로크가 짧아 고회전까지 솟구치는 모양새가 가볍고 빠르다. 회전 질감 역시 블록이 동일한 2.0 디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연비에 집중해볼 필요가 있다.
시속 100㎞ 때 순항 기어 7단이 맞물리면 엔진 회전수는 1800rpm 근처에 머문다.
한 템포 낮춰 시속 90㎞로 정속 주행하면 복합연비를 훌쩍 뛰어넘는, 1리터당 20㎞ 안팎의 평균연비를 꾸준히 기록한다. 큰 덩치의 중형 SUV로서 이례적이다.
순항 상태와 이때 엔진 회전수만 따져보면 직렬 6기통 디젤이 부럽지 않다. 한없이 조용하고 솜털처럼 부드럽다.
중형 SUV 가운데 처음으로 시도한 배기량 1.7은 르노삼성과 우리 모두에게 도전이자 모험이다.
애써 1.7 dCi를 고집하지 않아도 된다. 새 QM6에는 비슷한 배기량의 가솔린과 LPG 모델까지 존재한다.
길거리에서 택시만큼이나 흔해진 SUV 모델에 싫증 나서 프랑스 감성이 가득한 유러피언 SUV를 택한다면 QM6는 최적의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