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미국, 일본, 유럽 등 우리가 아는 선진국의 ‘바벨탑’도 부채로 쌓아 올린 사상누각(砂上樓閣)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과거에는 전쟁을 위해 국가 부채가 늘어났다면 지금은 가계까지 미래소득을 당겨 쓰고 있다. 이자를 갚느라 저축은커녕 당장 먹고 입는 데 쓰는 돈마저 줄여야 하는 상황이다. 인류의 삶이 지금처럼 넓게 부채에 지배당했던 적이 있었던가.
왜 인류는 부채를 일으킬까(?) 답은 간단하다.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의 본질인 ‘덩치 키우기’에 대한 강한 욕구 때문이다. 살림살이가 팍팍해 어쩔 수 없이 남에게 손을 벌리기도 하지만, 부채가 늘어나는 주원인은 아니다. 부채는 인간사에서 거북이가 토끼를 따라잡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과속엔진 중 하나다. 비용보다 ‘부’라는 축적의 기회가 더 클 때 빚을 내서라도 투자를 감행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선진국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2만 달러 시대를 지나 3만 달러를 넘나들자 복지에 대한 요구가 늘어나고, 인프라 투자가 증가하고 있다. 성장률 정체로 정부가 인위적 경기 부양의 유혹에 빠지면서 공공부채는 언제든지 급증할 수 있는 여건이다. 빚내서 집을 사느라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부채는 또 어떤가. 이미 높은 레버리지 상태이다. “고령화로 부양인구 대비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할 경우 한국 경제는 자산 가격 하락에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Population Ageing, Macroeconomic Crisis and Policy Challenges, 2011.06)는 일본 니시무라(Nishimura) 교수의 경고가 더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이미 위험에 한 발을 들여놨다 해도 거짓이 아닐 게다.
‘부채’라는 말만 들어도 넌더리가 날 것이다. 한 방에 털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급격한 부채 축소는 자살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 된다. 자칫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켜 장기불황 즉,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의 원인이 될 수 있다.
1929년 10월 24일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시작된 미국의 대공황이 단적인 교훈이다. 그 출발은 과도한 긴축이었다. 대공황의 초기(1929년~1933년)만 해도 정책 결정자들은 환호했다. 절대 부채가 1450억 달러로 200억 달러나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호가 절규로 바뀌는 시간은 오래지 않았다. 소비와 투자는 곤두박질 치고, 긴축 통화정책의 영향으로 GDP성장률은 급격하게 추락했다. 덕분에 GDP대비 부채율은 대공황 초기 160%에서 258%로 오히려 증가했다. 너무 이른 출구 전략이 때론 경제를 망치는 비극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그렇다고 빚을 껴안고 살라는 얘기는 아니다. 안전한 부채란 없기 때문이다. 하버드 경제학 교수 케네스 로고프의 말을 빌리자면 과도한 부채는 차입의 주체가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이든 언제나 우리를 부지불식간에 금융절벽(Financial Cliff)으로 몰아세우곤 한다. 그러한 상황은 신뢰의 위기를 만들었고, 결국 그 절벽으로 우리를 밀어버린다.
2000년부터 2002년 사이 미국 가계의 금융 자산을 5조 달러나 날려버린 IT거품 붕괴는 소비 감소와 연결되지 않았지만, 미국 주택가격의 하락은 엄청난 소비 감소로 인한 경제적 대재앙을 몰고 왔다. 거품이 꺼진 IT주식을 가진 계층은 대부분 빚이 거의 없는 최상류층, 즉 채권자인 반면 주택가격 하락의 직격탄은 빚을 가진 서민, 즉 채무자들이 맞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한 조사에 따르면 경제 위기를 통해 과다부채를 조정한 경우가, 위기를 겪지 않고 부채를 조정한 경우에 비해 진행 기간이 길고 조정 규모와 고통도 컸다.
부채 문제는 늘 모양은 변했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부채에 관대한 문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