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중은행 임원의 말이다. 초저금리 속에서 대출에 이어 영업 규제까지 강화되고 있다며 걱정이 한가득이다. 핀테크에 대항할 ‘혁신’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에 밤잠까지 설친다고 한다. 그의 근심은 숫자로 대변된다. 내년 금융지주사 순이익은 5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시계 제로다.
◇제로금리에 수수료 규제까지 ‘꽉 막힌 영업’ = 19일 관련 업계 따르면 3분기 말 기준 국내 은행의 평균 순이자마진(NIM)은 1.61%를 기록했다. 3년 만에 첫 하락 반전이다. 기준금리가 한 차례 더 인하되면 추가 하락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금리가 1%포인트 하락할 때 NIM은 평균적으로 6~9bp(1bp=0.01%) 하락했다. 주요 금융연구기관에서는 내년 대출 성장률이 5% 초중반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대기 금융연구원 연구실장은 “가계대출은 정부 정책으로 성장세가 둔화하고 기업 대출은 이미 중소기업 대출 증가율이 높아 확대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수수료 등 비이자이익으로 활로를 모색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파생결합상품(DLF) 사태’ 대책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은행은 손실 위험이 20~30%인 사모펀드를 판매할 수 없다. 고령화 시대에 맞춰 최근 은행들이 영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신탁도 대상에 올랐다.
대책 발표 하루 뒤 열린 업계 간담회에서 김태영 은행연합회장이 은성수 금융위원장에게 “일부 은행의 DLF 문제가 전 은행권의 금융투자상품 판매 제한으로 확대된 점은 매우 안타깝다”며 반기를 든 것도 이 때문이다.
‘대마불사’도 옛말이다. 혁신으로 무장한 핀테크 기업들이 금융과 정보통신기술(ICT)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장을 넘보고 있다. 당장 1300만 명을 거느린 토스가 제3인터넷은행 사업권을 딸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이 연구실장은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경쟁이 심화할 것”이라며 “인터넷전문은행 영업 확대와 신규 인가 가능성, 오픈뱅킹 시행 등으로 예금 수취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내년 금융지주 순이익, 5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 = 이런 우려들은 내년 예상 성적표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신한·KB·하나·우리금융지주의 2020년 순이익은 11조4196억 원으로 추정된다. 전년(11조7094억 원) 대비 2.47% 감소한 것으로, 5년 만의 첫 마이너스 성장이다.
하나금융은 올해보다 7.5% 줄어든 2조3428억 원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4대 금융지주 가운데 하락폭이 가장 크다. 우리금융(2조1038억 원, 전년 대비 -2.2%), 신한금융(3조6606억 원, -1.3%), KB금융(3조3124억 원, -0.2%)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은행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이 현재 10%대에서 내년 6%대 중반으로 떨어질 것”이라며 “수익성이 올해보다 더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물경제 위축으로 은행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정 소장은 “아직 기업 대출 건전성 지표는 양호한 편이지만, 최근 업황지수 등이 안 좋아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은행 대출이 중기에 쏠리면 건전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문제는 체격이 작은 지방은행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 이준수 금융감독원 국장은 “지역경기가 안 좋고 중기 대출이 많은 반면 가계대출이 없다 보니 만기 기간이 짧고 하락폭이 더 크다”며 “지방은행 생존 전략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