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확장재정으로 국고보조금 등 지출은 늘어나고 있지만 ‘세수 호황’이 끝나고 세금은 적게 걷히면서 정부 살림이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는 이른바 ‘마이너스 통장’에 해당하는 재정증권을 역대급으로 사용 중이다.
국고보조금도 꾸준히 늘면서 재정건전성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세수를 늘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경기 악화로 기업들의 상황이 좋지 않은 데다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도 세금을 올리는 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17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재정증권 누적 발행 액수는 49조 원으로 집계됐다. 재정증권은 쉽게 말해 정부가 사용하는 ‘급전’이다. 국고금 출납 과정에서 생기는 일시적인 부족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단기 유가증권으로 반드시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 들어 2월부터 9월까지 매월 3조~10조 원 규모로 총 49조 원의 재정증권을 발행했다. 6월까지는 재정 조기 집행 자금을 융통했지만 7월부터는 앞서 발행했던 재정증권 상환에 사용했다. 결국, 빚을 내서 빚을 갚은 모양새다.
앞서 2017년과 2018년 각각 7조 원과 2조 원의 재정증권을 발행했던 것과 비교하면 총액도 크게 늘었다. 특히 지난해보다 25배가 늘어난 것은 결국 정부의 확장적 재정에 세수 부진이 더해졌다는 분석이다. 나가는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이 없다 보니 급전에 해당하는 ‘재정증권’을 발행해 충당한 것이다.
아울러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에 사업비를 지원하는 국고보조금은 내년 8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됐다. 그동안 수년째 50조~60조 원대에 머물렀던 국고보조금이 최근 3년 새 26조 원 넘게 급증했다. 특히 국고보조금 중 법령상 근거가 있어 한 번 늘어나면 손대기 어려운 의무지출의 증가 속도가 재량지출의 2배 수준에 달해 그만큼 재정 부담이 커졌다.
기초연금·아동수당, 의료·생계급여, 영·유아 보육료, 일자리 안정자금, 주거급여, 장애인 연금,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취업 성공 패키지 등 복지 사업과 함께, 상수도 시설 확충, 재해위험 지역 정비, 전기차 관련 사업 등에 국고보조금이 사용된다.
이날 기재부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김성식 의원에게 제출한 ‘2014∼2020년 국고보조금 추이’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기준 내년 국고보조금은 총 86조1358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국고보조금 의무지출은 2014년 52조5319억 원에서 꾸준히 늘어 올해 77조8979억 원까지 올라섰다. 특히 최근 3년 동안에는 매년 두 자릿수 증가세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세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기재부가 발간한 ‘월간 재정동향 11월호’에 따르면 올해 9월까지 정부 지출은 386조 원으로 지난해보다 40조9000억 원이 증가했다. 반면 9월까지 국세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조6000억 원 줄어든 228조1000억 원에 그쳤다.
1~9월 기준 국세 수입이 줄어든 것은 2013년 이후 6년 만이다. 소득세는 근로·자녀 장려금 확대로 2조4000억 원이 감소했다. 법인세는 6000억 원이 더 걷혔지만 경기 악화로 2017년 말 법인세율을 25%로 3%포인트 인상한 효과도 미미했다.
결국, 이 같은 상황에서 ‘세수 펑크’도 우려되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국세 수입과 관련해 “연말 기준으로 세입예산에 다소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세입예산의 1% 내에서 부족이 발생하지 않을까 한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내년 세입도 올해보다 0.9%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본예산 기준으로 세입이 줄어드는 것은 2010년 이후 10년 만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발행하는 적자국채도 큰 폭으로 늘어난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 예산안 기준으로 적자국채는 60조 원 수준으로 올해보다 26조 원이 늘어난다. 외환 위기인 2000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하지만 한 민간연구원 관계자는 “국가 부채는 커지고, 재정은 악화되고 있지만 정부는 계속 괜찮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다”며 “결국 시장과 소통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