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연구자에 대한 존중의 문화가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연구자의 연구에 대해 시간적·예산적 제약을 가하는 것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한다고 한다. 그래서 정년과 상관없이 연구실과 실험기자재를 계속 제공하여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 대학과 교류 대학인 나고야 소재 메이조대학에서 리튬전지를 개발한 공로로 화학상을 수상한 요시노 교수도, 2013년 같은 대학에서 물리학상을 수상한 교수도 모두 80세에 가까운데도 강의와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한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둘째, 기초과학 연구의 경우 단기 성과에 집착하기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꾸준한 투자를 한 결과라는 것이다. 올해 화학상을 수상한 교수도 아사히화성이라는 기업 연구소 시절 공헌한 연구 결과가 수십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노벨 화학상을 대학이 아닌 일반기업의 연구소에서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번 기업 출신 수상자의 경우 박사 출신도 아닌 학부 졸업생이었다. 대학은 물론 기업 연구소에서도 장기적 시각을 가지고 기초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는 점이 부럽다.
셋째, 일본 교수들의 경우 미국 학위보다는 일본 국내 학위자 출신이 많아 영어가 부족한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영어능력 부족을 극복할 수 있도록 연구의 중심을 일본인 연구자로 하여 이들로 하여금 국제활동과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알고 있는 일본 교수에 따르면 연구재단의 지원 기간이 기본적으로 7년이고,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다시 7년을 연장해주고 또다시 5~6년 연장이 가능하여 약 20년간 예산 걱정하지 않고 제한없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부러웠다. 한편으론 일본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몇 년 내 심지어 1년 이내의 기간에 연구 결과물을 내보여야 하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여 볼 때 ‘27 대 0’이라는 노벨상 수상자 수의 차이가 이해가 되었다.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일본인 학생이 같은 반에 있었다. 세칭 명문대 출신이었다. 그에게 지지 않으려고 캠퍼스 앞 에스프레소가게에서 더블샷을 마시고 며칠 밤을 새워 그보다 나은 성적을 얻고 나서 결국 쓰러졌던 기억이 난다.
같이 공부를 하더라도 귀국하여 분위기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연구하게 되면 앞으로도 한일 간 노벨상 격차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글로벌 산업에서의 국가경쟁우위를 설명하는 다이아몬드 모형이 있다. 이것은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포터 교수 주도로 10개국 15개 산업에 대해 각국 연구자들이 산업의 성립, 성장 및 경쟁우위 달성 및 지속에 관해 조사하여 ‘어떤 국가적 특성이 이들 국가를 홈베이스로 하고 있는 산업(기업)으로 하여금 경쟁우위를 갖도록 하는가?’라는 연구 주제에 답한 경험 모형이다.
이 모형의 4가지 직접적 결정요인 중 요소부존 조건이 있는데, 여기에서 고급화된 특수요소(예를 들어 특수분야 엔지니어)를 창출하는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연자원의 풍부한 부존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함께 경쟁력 있는 관련 및 지원산업이 국내에 존재할 때 경쟁력을 확보하기 쉽다고 한다.
분야별 노벨상 수상을 그 분야에서 경쟁우위를 확보한 것이라고 의제할 때, 우리와 일본 사이에 큰 격차가 발생하는 이유는 노벨상 기준을 충족하는 고급화된 특수요소를 창출하는 기제가 우리에게 없어서일까? 아니면 경쟁력 있는 관련 분야의 연구자가 없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제3의 다른 요인에서의 격차가 있는 것일까?
다행히 최근 이종환 선생이 창설한 관정재단이 5개 분야 각 상금 15억 원의 한국형 노벨상을 만들어 시상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 상이 우리나라에 글로벌 경쟁력 있는 인재 창출을 위한 유인 기제로 작동하였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