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벌여왔던 무역전쟁의 출발점은 ‘중국이 불공정무역을 통해 미국에 대한 막대한 무역 흑자구조를 쌓아왔다’는 의심이었다. 2018년 미국의 총 상품 무역적자는 8913억 달러 규모였는데, 이 중 대중 무역적자는 4192억 달러에 달했다. 대(對)중국 무역적자 규모가 큰 이유를 중국의 환율조작 및 불공정무역 정책 때문으로 규정하고 여러 가지 보복관세 등을 시행했으나, 그 결과 오히려 미국의 무역적자폭이 더욱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2018년 3월 이래 미국의 대중국 무역 보복조치로 중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위안화의 달러화 대비 가치는 11% 절하되었으나, 중국의 미국 이외 교역 상대국에 대한 위안화 가치는 2004년 이래 46% 절상되어왔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중국의 인위적 평가절하 정책은 없었다고 평가하는 가운데, 여전히 악화하는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부자감세 정책 및 국방 지출 확대에 따른 재정적자 확대, 만성적 낮은 저축률과 그에 따른 과잉소비의 결과로 보고 있다. 20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미국의 평균 저축률은 6.3%였으나, 2019년 저축률은 2.2%로 급락하였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힘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여 상대국을 통제하려던 트럼프의 의도가 오히려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영향력을 빠르게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 제프리 프랭클 하버드대 교수의 진단이다. 2018년 기준 전 세계 국제교역의 결제통화 비중을 보면 미국 달러화가 47%, 유로화는 31%를 차지하고 있다. 또 전 세계 외환거래의 88%가 달러화를 포함하고 있고 유로화를 포함한 외환거래는 32% 수준이다. 또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미국 달러화를 외환보유액의 62%를 보유하고 있으며,유로화는 20% 정도 보유하고 있다는 통계를 보면 미국 달러화는 여전히 기축통화임이 틀림없다.
이처럼 사실에 의존해 트럼프 행정부가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을 방치해 오다가, 2020년 대선을 의식하면서 느닷없이 이란에 대한 달러화 거래 금지를 선언하는 등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으로 스스로 달러화의 신뢰도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다수의 미국 경제학자들이 우려하고 있다. 즉, 지금과 같은 정책이 반복될 경우 국제 거래에서 미국 달러화 비중은 점차 줄어들면서, 영국 파운드화와 같은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트럼프가 스스로 몰락을 재촉하는 자충수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분명한 지표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묻지 마 분노’ 덕분에 당선된 트럼프의 집권 기간 미국의 상위 1%가 전체 자산의 40%를 소유하게 되고, 하위 90%가 소유한 자산은 25% 미만이라는 통계이다. 미중 무역전쟁은 이처럼 패권국가 교체 과정의 불가피한 산물이 아니라, 승자 독식의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의 지속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과정이라는 것이 미국 경제학계의 중론이다.
그리스 도시국가 체제가 로마제국으로, 대영제국에서 ‘팍스 아메리카나’의 미국으로 바뀌는 패권국가 교체 과정은 인류사에 기념비적 ‘선의의 혁신경쟁’의 역사였다. 하지만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America First)’는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안정적 질서 유지 책임을 지고 있는 패권국가가 아니라, 자신의 앞가림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는 ‘깡패국가(Bully Country)’에 불과하다는 고백이다. 이처럼 진정한 의미의 패권국가들이 사라지고, 깡패국가들만이 횡행하는 시절에, 한국과 같은 소국 개방경제가 살아남는 데 필요한 것은 날카로운 발톱, 즉 기술적 시장 지배력밖에 없다는 것은 인류 문명사가 확인시켜주는 교훈이다. 우리 정부가 전략적 기술 개발 및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