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업태도 마찬가지이지만 전통시장이라는 유통업태가 업태로 구분될 수 있으려면 차별성이 존재해야 하고, 이러한 차별성이 부각될 때만 흔들리지 않는 고객 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 전통시장은 ‘전통적으로’ 인근 소비자를 대상으로 식품 위주의 제품과 신발 및 잡화 등의 일상품을 판매하여 왔으나, 아쉽게도 이제 취급 품목이나 상품군에서 차별성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취급 상품의 가격대나 브랜드, 식품이라면 가공의 정도 등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전통시장의 지원에 올해만 5000억 원의 예산이 잡혀 있고 최근 수년 동안 몇 조 원를 쏟아 붓고 있는데, 온통 시설 개선에 투입되고 있어 과연 비용 대비 효과가 나타날지 의심스럽다. 멀쩡한 대형마트나 아파트 상가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현재 상황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전통시장의 차별성은 무엇이냐 묻는다면 식품은 원재료 위주로 그리고 잡화는 저가 제품을 취급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문제는 전통시장이 내세우는 가격적 매력에 이끌렸던 소비자층이 점점 얇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주역은 한때 전통시장의 주요 고객이고 가족의 쇼핑을 담당하던 주부들이다. 대한민국의 주부는 점점 바빠지고 있다. 2006년에는 30% 후반에 머물던 맞벌이 가구가 이제는 50%에 육박하며 그 추세는 지속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맞벌이 가구가 홀벌이 가구보다 2배 많다. 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자원은 시간이고 항상 시간당 효용성 혹은 효율성을 생각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급 노동자인 주부가 느끼는 시간 부족은 남성에 비해 평균 2.5배, 그리고 전일제 유급 노동자인 주부는 무려 6.6배나 높다. 이러한 변화에 전통시장의 활성화 방안이 제대로 맞추어져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시간당 효율성이 중요하므로 쇼핑 장소를 고른다면 필요한 물건을 모두 다 구매하는 곳이 중요하다. 전통시장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지 못하고, 적어도 1㎞ 이상 떨어진 기업형 슈퍼마켓(SSM)이나 대형마트를 찾아야 쇼핑을 완성할 수 있다면 과연 처음부터 전통시장에 갈 것인가? 이런 상황이 통상적인 일이 됨에 따라 1990년대부터 일본의 전통시장이나 상가는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 문을 열었다. 시간당 효율성은 단지 쇼핑의 효율성을 넘어 외출의 효율성으로 확대된다. 나간 김에 쇼핑도 하고, 밥도 먹도, 미용실도 가고, 은행도 들르는 식이다. 특별히 일요일의 쇼핑은 상품 구매와 함께 가족과의 일주일 만의 여정이다. 온 식구가 즐겨야 할 귀한 시간에 문을 닫은 대형점 대신 전통시장을 간다면 외출의 효율성은 1도 없다. 그래서 대형점 일요일 휴일 규제는 평일 휴일 규제보다 전통시장에 덜 이익이다.
이제 손이 많이 가는 식재료는 바쁜 주부들에게는 부담이다. 1980년대만 해도 닭이 먹고 싶다면 생닭부터 시작했어야 할 식재료는, 이제는 부위별로 손질되어 있거나 튀기거나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는 형태로 제공된다. 그것도 귀찮으면 식당에 가거나 배달 주문을 하면 된다. 바빠진 주부에게 전통시장의 경쟁자는 면세점이 아니라 식당이나 음식배달 업체이다. 판매자가 더 많은 가공을 하면 비싸지지만, 소비자가 직접 손질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의 가치를 생각하면 오히려 저렴한 식재료가 된다. 전통시장의 저가격과 많은 손질의 필요성이 있는 상품 구색은 바빠지는 주부를 위해 손질이 덜 가는 그리고 보다 높은 가격의 상품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
전통시장의 부진은 청년 창업이 부족해서, 주차장이 부족해서, 대형점이 있어서, 온라인 거래를 못 해서가 아니라 주고객인 주부들이 바빠졌기 때문이다. 이제 전통시장은 얇아진 주고객층에 맞추어 규모와 숫자를 줄이거나, 그들의 취향에 맞게 구조조정을 하거나, 상점가나 식당가로 변신하여 접근성을 높이는 등 몇 가지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진정 필요한 것은 변화를 주도하고 기획하는 지도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