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이번 논란은 KDI가 한은의 심장을 찔렀다는 점에서 과거 논쟁과 판이 다를 전망이다. KDI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이라는 한은법에 명시된 한은의 설립목적 중 금융안정을 폐기하고 물가안정에나 주력하라고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아울러 KDI는 아직 공식화하진 않았지만 1.25%로 역사상 최저치에 와 있는 기준금리를 더 인하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기준금리가 실효하한에 다다르면서 추가 인하에 신중한 한은을 압박하고 나선 셈이다.
논쟁의 1단계 결론은 다음달 29일로 예정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기준금리 결정이 될 전망이다. 다만 조동철·신인석 위원이 KDI 출신인데다 이들의 입장이 사실상 KDI 주장과 같다는 점에서 KDI가 일단 우세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과거 KDI는 정권이나 정부 입장을 대변해 왔다는 점도 염두에 둘 대목이다.
28일 KDI는 ‘최근 물가상승률 하락에 대한 평가와 시사점’ 자료를 발표하면서 한은 통화정책이 본연의 책무인 물가안정을 중심으로 수행될 수 있도록 운용체계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의 통화정책 운용체계는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를 지속적으로 하회하더라도 금융안정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통화정책이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수행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한은법에 있는 금융안정을 폐기하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은 “(금융안정 조항을) 명시적으로 넣어놓을 필요가 없다고 밝힌 것”이라고 말해 이를 인정했다.
한은법 목적조항인 제1조에는 1항에 ‘효율적인 통화신용정책의 수립과 집행을 통하여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라고 적시하고 있으며, 2항에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할 때에는 금융안정에 유의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2항인 금융안정 조항은 2016년 한은법 개정으로 추가로 삽입된 바 있다.
한은의 목적조항 변경까지 언급한 것은 너무 나갔거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안정을 강조하고 나서는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글로벌 트렌드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지를 묻는 질문에 정 총괄은 “(금융안정 목표를 빼는 것이) 꼭 맞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장기간 저물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고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이를 두고 한은 고위관계자는 “한은법에는 금융안정이 하나의 멘데이트(mandate·책무)로 돼 있다. 법에 충실하게 물가안정과 거시경제 안정을 위해 통화정책을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금융안정에 유의해야 한다. 거기에 충실하는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다만 논란의 확산을 의식해서인지 그는 “한은법에 대해 말하는 것은 현재로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올 수 있어서”라고 덧붙였다.
KDI의 공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기준금리 추가 인하를 주장할 개연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당장 KDI가 다음달 내놓을 경제전망에서 그 수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정 총괄은 “다음달 내놓을 경제전망에서 내년 상반기 정도까지의 (통화정책)방향을 함께 발표할 예정이다. 어떤 톤으로 이야기할지는 내부에서 확정되지 않아 (지금 말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KDI 출신 조동철·신인석 금통위원들의 행보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두 위원 역시 물가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금리인하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당장 11월 금통위에서 추가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