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올 연말 1180원에서 1200원을 기록할 것이란 전망이다. 원·달러가 지난주 한때 1170원을 밑돌며 3개월 보름만에 최저치를 경신했었다는 점에서 두달 남짓한 올해 동안 추가 하락보다는 상승에 무게를 두고 있는 셈이다. 다만 1150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견해도 있었다는 점에서 향후 방향을 예단하긴 어려워 보인다.
지난달 말 이달 초까지만 해도 1200원을 뚫고 안착할 기세였다는 점에서 그간 롱포지션이 많았었다. 원·달러 1200원대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시가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든 레벨이란 인식과 함께 외환당국의 방어의지도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최근 원·달러가 1160원대까지 떨어진 것은 롱스탑 물량이 주도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연말 환율에 대한 견해가 갈리는 것은 그간 환율시장 주변에 영향을 줬던 미·중 무역협상 등 대외 불확실성과 국내 경기에 대한 인식 등에서 차이를 보였기 때문이다.
#1. 미·중 무역협상과 11월 APEC 스몰딜 = 환율 방향을 결정지을 가장 큰 변수로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협상 진전여부를 꼽았다. 당장 다음달 16일부터 17일까지 칠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평(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만나 공식 합의문에 서명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합의문 서명에 대한 의미를 두고서는 의견이 갈렸다.
우선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은 현 레벨에서 흐름을 이어가다 다음달 APEC에서 G2(미·중)간 스몰딜이 확정되면 더 떨어질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위험선호 현상과 함께 글로벌 경기도 선순환하며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반면 스몰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두기 어렵다는 견해가 많았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미·중 합의가 형식적으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12월15일 부과하기로 예정된 관세를 유예할지 여부가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경원 연구원도 “원론적 합의 이상 도출하기 어렵다”며 “합의를 전후해 위안화에 변동성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장은 긍정적 효과 있더라도 그 효과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안영진 SK증권 연구원은 “스몰딜 여파로 연말까지 글로벌 경제 상황이 긍정적으로 흐를 수 있겠다”면서도 “기본적으로 패권전쟁이다 보니 완전한 타결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연구원도 “미·중간 1단계 협정이 잘된다 해도 2단계 협정이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간 봐온 협상을 보면 여전히 중립적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 역시 “미·중간 무역분쟁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완화되는 분위기다. 다만 APEC 정상회담에서 양국간 타결을 볼지 여부가 중요하다”며 “(설령 타결을 본다해도) 크리스마스를 지나면서 불확실성은 다시 커질 여지가 있다”고 봤다.
다만 연준이 12월에 추가로 금리인하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을 높게 보는 분위기다. 김유미 연구원은 “10월 FOMC가 금리인하를 단행하더라도 매파적(통화긴축적) 입장이 나오면 달러가 강보합권에 머물러 시장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안영진 연구원도 “중앙은행 통화정책이 시장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전승지 연구원 또한 “10월 금리인하 후 연내 추가로 인하에 나설 것인지 여부에 따라 위험자산 선호현상에 주요 변수가 될 것”이라면서도 “안할 것이라는게 기본 시나리오”라고 전했다.
반면, 연준 FOMC가 더 이상 변수로서 작용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건형 연구원은 “연준 기조는 최대한 금융시장이나 경제성장의 하단을 지지해주겠다는 것이다. 연준이 추가로 금리를 인하한다면 금융여건이나 경제상황이 안좋아서다. 또는 G2 무역협상이 어그러질 가능성이 커서다”며 “연준 통화정책은 (외환)시장 방향성을 결정하기 보단 안전판 역할을 하는 정도라는 점에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3. 브렉시트 합의 지연 = 브렉시트 문제는 단기적으로는 원·달러 하락압력으로 꼽혔다. 다만 연내 합의보단 지연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평가다. 내년으로 접어들면서 노딜 브렉시트 우려가 재부상할 여지도 있다고 봤다.
하건형 연구원은 “최근 유럽통화가 노딜 브렉시트 완화로 소폭 반등하는 모습이다. 유럽 경기 불안도 조금 완화되는 분위기다. 11~12월 들어 개선세가 지속될지 여부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정희 연구원은 “브렉시트도 합의가 아니라 계속 연기될 것 같다. 다만 내년 1월이면 노딜 우려가 또 나올수 있겠다. 영국과 유로쪽 경제불확실성으로는 작용할 수 있겠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합의되면 경제주체들의 심리 호조와 경제활동에 긍정적으로 이어지면서 신흥국 통화 강세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 변수로서 별다른 영향력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안영진 연구원은 “브렉시트 문제는 별 재료가 안될 것이다. 연기되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노딜 브렉시트겠지만 최근 조기총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조기총선이 이뤄진다면 없어지는 이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브렉시트에 대한) 금융시장 민감도도 줄어들고 있다. 일시적으로나마 방향성을 줄 수 있겠지만 추세적인 방향성을 잡는 재료로는 비중을 적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4. 국내 경기 반등 여부와 기타 변수들 = 국내 경기가 반등할지 여부도 주요 변수로 꼽혔다. 다만 바닥은 지났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었다.
문정희 연구원은 “고용은 정부 영향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수출과 투자가 부진하고 소비도 가라앉고 있다”면서도 “신흥국이 더 취약하다. 국내 경기부문은 더 나빠질게 있을까라는 생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최근 경기부진은) 정치적 불확실성 등 외부적 요인들이 더 강하다”고 진단했다.
전승지 연구원도 “수출은 10월과 11월 저점 이후 연말쯤 기저효과를 반영하면서 좋아질 것”이라며 “최근 늘고 있는 선박 수주도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봤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화두가 확장적 재정이었다는 점에서 재정여력이 있는 국가들에 대한 메리트가 부각할 수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민경원·전승지 연구원은 “IMF가 최근 재정지출을 강조했다”며 “재정 여력이 있는 국가들의 선호도가 높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원화에 긍정적 측면(원·달러 하락재료)으로 작용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경기지표나 장단기금리 역전에 따른 경기우려 부각 가능성, 미국 경기 둔화 가시화 등 문제가 재확산할지 여부도 주요 변수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