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5일 한국의 세계무역기구(WTO) 내 개발도상국 지위를 사실상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한 후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열어 “우리 정부는 미래에 WTO 협상이 전개되는 경우에 우리 농업의 민감분야는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협상할 권리를 보유·행사한다는 전제 하에 미래 WTO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한 주요 배경으로 우리의 경제적 위상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더 이상 개도국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1995년 WTO 가입 이후 약 25년이 지난 현재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12위, 수출 세계 6위, 국민소득 3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홍 부총리는 “WTO 164개 회원국 중 주요 20개국(G20) 및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을 모두 충족하는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9개국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등 선진국뿐 아니라 개도국들도 우리의 개도국 특혜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점도 부담이 됐다. 우리와 경제 규모가 비슷하거나 늦은 싱가포르, 브라질, 대만 등 다수 국가가 이미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황으로, 우리가 개도국 특혜 관련 결정을 미룬다고 해도 향후 WTO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인정받을 가능성은 작다.
정부는 대신 쌀 등 민감품목에 대한 별도 협상권한을 확인하고, 개도국 지위 포기가 아닌 미래 협상에 한해 특혜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이번 결정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쌀 등 농업 분야에 대해선 별도의 대책을 내놨다.
먼저 공익형 직불제의 조속한 도입을 위한 농업소득보전법 개정과 안정적인 제도 정착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공익형 직불제로의 전환을 전제로 직불금 예산안을 대폭 올해 1조4000억 원에서 2조2000억 원으로 대폭 증액했다.
이와 함께 농업재해보험의 품목을 확대하고, 지역 단위 먹거리 소비기반 마련을 위한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주요 채소류에 대해선 가격안정제를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한편, 품목별 의무자조금을 활용한 자율적 수급조절을 촉진하는 등 농산물 가격안정기능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 밖에 청년영농정착지원금(최대 3년간 월 80만~100만 원), 농지은행 등 청년농에 대한 농지·자금지원을 내실 있게 추진하고, 향후 사업성과에 따라 제도를 확대할 계획이다.
홍 부총리는 “이번 결정이 우리나라 농업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모멘텀이라고 생각한다”며 “이제까지 정부가 견지해왔던 농업의 경쟁력 강화대책은 지속적으로, 오히려 강화해서 추진해 나갈 것이며, 농업인과 대화에서 농업인들이 요구한 몇 가지 사항들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앞으로 관계부처 간 추가적으로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