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하는 시간] 가장 부족한 것이 식물의 생장을 결정한다

입력 2019-10-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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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일 신구대학교식물원 원장·신구대학교 원예디자인과 교수

집에서 키우는 화분 몇 개에서 식물들이 누렇게 말라죽는 일이 생겨서 아내로부터 아침저녁으로 타박을 받고 있습니다. 식물 전공한 사람이 맞느냐, 식물원장 일은 제대로 하는 것이냐 등등, 한두 식물이 죽는 탓에 제가 집 밖에서 하는 모든 관련된 일들에 대해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함께 산 처음부터 제 아내는 제가 식물을 공부했다는 이유만으로 집에서 키우는 화분에 물 주기조차 모두 제 임무라고 맡겨왔습니다. 물론 제가 그걸 좋아할 뿐만 아니라, 만일 잎 한 장이라도 제 허락 없이 잘라내면 엄청난 잔소리를 해대곤 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식물을 바라보는 것 외에는 식물 돌보기에 관련된 것은 거의 할 수가 없기도 합니다.

화분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쉽게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내에 있는 경우에는 빛이 부족한 것 외에도 제한이 많습니다. 뿌리를 뻗을 만한 공간이 아주 부족할 뿐만 아니라, 식물이 필요로 하는 물과 양분을 화분이 담을 수 있는 양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야외의 땅에서 자라는 식물에 비해 많은 공을 들여 보살펴야만 합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할 일은 점점 더 많아지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더 짧아지다 보니 집에서 키우는 식물들을 돌보는 데 소홀해진 티가 금세 나타나서 식물들이 죽어나가게 된 것입니다.

이 친구들이 죽게 된 것이 물이 부족해서는 아닙니다. 사실 봄철에 화분을 갈아주어 뿌리가 자랄 공간을 만들어주고 새로운 토양으로 바꿔줘 양분을 충분히 공급했어야 했는데, 지난봄도 바쁘다는 핑계로 게으름을 피운 탓에 화분을 갈아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비료라도 좀 줬더라면 문제가 덜했을 텐데, 그렇게 하지 못한 채 긴 시간이 흐르다보니 무엇인가 부족한 양분이 생겼던 것입니다.

식물이 살아가는 데에는 물, 공기, 온도 등의 환경 조건 외에 지구의 지각을 이루는 물질로부터 기원한 무기양분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공통적으로 필요로 하는 무기양분을 필수원소라고 합니다. 식물이 필요로 하는 각 필수원소의 양은 원소별로 다릅니다.

그런데, 이들 필수원소 중에서 식물이 필요로 하는 양에 비해 가장 낮은 비율로 공급되는 성분에 의해서 식물의 생장이 결정됩니다. 달리 말하면 필수원소 중 하나라도 부족하게 되면 식물은 생장을 못하고 그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죽게 됩니다. 마치 자격증 시험을 볼 때 한 과목이라도 기준 점수에 이르지 못하면 과락이라고 해서 자격증 취득이 안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때 그 부족한 원소를 제한 요소라고 합니다. 다른 것이 아무리 풍부해도 제한 요소가 하나라도 생기면 삶을 지속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제한 요소가 삶을 어렵게 하는 것은 식물만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도 늘 제한 요소는 존재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 제한 요소를 극복하고 노력하면서 삶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우리 사회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성숙해왔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성숙한 사회를 이루는 데 여전히 제한 요소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 사회의 제한 요소를 배려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단 권력자, 부자, 상위 직급자들의 그 상대편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개인들의 공공에 대한 배려심을 더 떠올려봅니다.

서로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으려 하는 것이 배려심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소외계층이 최대한 줄어들도록 도와주고 함께 살아가려고 모두가 노력하는 것이 더 성숙한 국가와 사회가 가져야 할 배려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배려심이 제한 요소가 되지 않는 그런 공동체가 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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