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는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해석이 가능했던 상황을 전해 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 모 공무원이 앞니가 좋지 않아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데 격무로 시간이 나질 않아 잇몸으로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공무원은 한·일 백색국가 제외 등 무역 분쟁으로 관련 정책을 주도적으로 수립한 국장이다. 이 국장 외에도 통상·수출 라인, 업종 라인 등 산업부의 많은 국이 쉴 새 없이 바빴다.
올해 7월 1일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밝혔으니 이와 관련된 산업부의 국들은 100일 넘게 ‘생고생’을 했다. 특히 소재부품국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정책 수립 과정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의 실상을 보여줬다. 소부장 등 한·일 교역 분쟁으로 인해 국회 특위 3개가 돌아갔고, 정부 내 경제부총리 회의도 주 2회씩 했다. 일본 문제뿐 아니라 섬유화학탄소과, 철강세라믹과도 소재부품국 내에 있어 이쪽도 챙겨야 했다. 가히 살인적인 업무량이다. 모 과장은 밤샘 작업은 물론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상황이 후배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한숨에서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소재부품국은 소재부품총괄과, 반도체디스플레이과, 섬유화학탄소과, 철강세라믹과 등 4개 과로 나뉘어 있다. 산업부 대부분 국은 3~5개 과로 이뤄져 있어서 얼핏 보면 보통 수준 규모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일 무역 분쟁을 겪으며 과연 소재부품국 하나로 대응이 가능하냐는 의구심이 들었다. 제삼자적 입장에서 그들의 역량 문제가 아닌 물리적 업무량이 너무 과하다.
한·일 사태를 겪으며 정부는 물론 정치권, 재계에서도 이번 백색국가 제외의 위기를 우리 기술 확보, 산업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소부장 관련 예산도 늘리는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했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일왕 즉위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에 방문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이를 계기로 경색된 한·일 관계의 개선 변곡점이 될지 주목된다. 이 총리의 일본 방문으로 양국 간 관계가 개선된다 해도 우린 우리대로 소부장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본이 우리를 때린 것처럼 일본이 다시, 다른 국가도 우리를 때릴 수 있다.
일본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기술 확보와 산업 경쟁력 강화의 필요성에 대한 교훈을 새삼 깨달았다. 특히 국민은 일본의 만행에 분노했고 노 저팬(NO JAPAN) 봉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소부장 정책의 뇌 격인 산업부의 로드(load)가 생기면 정책이 원만하게 실행될 수 없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 정책의 수립과 실행은 둘 다 중요하다. 우리 소재, 부품, 장비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이 마련된 만큼 이 정책을 착실히 실행해 현실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하는 산업부 소재부품국 환경으론 소부장 정책의 제대로 된 실행이 어렵다고 본다. 국민은 어떻게 볼까. 정책을 수립한 뒤 제대로 실행을 할 수 없는 환경에 대해서 말이다. 그로 인해 일본이 다시 우리를 때리고 이에 대한 대비가 안 돼 있다면, 그때 국민은 노 저팬 아닌 노 거버먼트(NO GOVERNMENT)를 외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