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장비 쪽에 일하는 A 씨는 대학 졸업 후 대우그룹에 입사해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았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로 몸담고 있던 사업부가 분사되면서 1차 하청업체로 전락했다. 이후 모기업의 부도로 분사된 회사도 경영난을 겪으면서 1차 하청업체에서 타 기업 2차 하청업체로 전전했다고 한다. 결국, 최근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일하고 있는 사업부만 다른 회사에 매각됐다고 한다. 그나마 핵심 사업부에 몸담고 있어 여러 차례 구조조정 여파를 이기고 살아남았지만 중소업체 직원으로서의 힘든 봉급자 생활을 토로했었다.
증권사에 근무하고 있는 B 씨도 졸업 후 대기업 간판을 단 증권사에 취직해 한 번도 회사를 옮기지 않는 성실한 회사 생활을 했었다. 회사를 옮긴 적은 없지만 외환위기 이후 다니는 증권사가 여러 차례 인수·합병(M&A)을 당하면서 경력상 4개 회사를 근무한 화려한 이력을 갖게 됐다고 농담을 했다. B 씨도 몇 년 전 회사가 또 M&A를 당하면서 결국 명예퇴직해 레스토랑을 하다가 지금은 개인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최근 ‘IMF(국제통화기금) 세대’라고 불리는 40대가 고용시장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통계치가 나온 적이 있다. 특히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40대 중·후반 상당수가 근로조건이 열악한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면서 20년 넘게 ‘고용시장의 취약계층’이라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는 보도에 지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실제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8월 고용지표에 따르면 다른 연령대는 모두 고용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40대만 감소세를 나타냈다. 무엇보다도 40대 취업난 속에서도 40대 초반과 후반의 고용지표가 큰 차이를 보여 ‘IMF 세대’의 비극을 실감 나게 했다. 8월 기준 40~44세는 인구가 7만7000명 줄었고 취업자도 4만6000명만 줄었다. 반면 45~49세는 인구가 2만3000명 늘었음에도 취업자는 오히려 4만9000명이나 줄었다. 이 같은 지표에서 우리 경제 ‘허리’ 역할을 하는 ‘IMF 세대’의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정부는 40대의 어려운 취업난에 대해 구조적 문제로 치부하며 손을 놓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였다. 40대 중·후반은 제2 베이비붐 세대로서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왔다. 지난해 총인구 5163만 명 중 45~49세 인구는 436만2000명(8.7%)으로 연령대 중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는 것이 이들 IMF 세대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인한 고용 악순환으로 평생을 취약계층으로서 힘든 가장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가끔 사회면 기사에서 40대 중·후반이 힘든 삶을 견디지 못해 가족들과 함께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사연이 전해질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그동안 정부는 40대에 대한 고용문제에 대해선 구조적 문제라고 손을 놓았지만 청년·고령·여성층의 일자리 해결을 위해선 매년 수조 원의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40대 일자리의 구조적 문제도 근본 원인은 정부의 잘못된 외환위기 대응이 주요 원인인데도 책임 있는 당국자의 사과 한마디 없다. 고용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나기엔 20년이 넘는 세월의 무게 속에 고용 취약계층에 내몰린 40대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최근 최저임금 인상 등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 중 40대가 차지하는 비율도 높다. 외환 위기에서 살아남은 ‘IMF 세대’마저 최근 명예퇴직으로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비운의 ‘IMF 세대’에 묶이게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40대의 일자리 감소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청·장년층 위주의 창업지원이나 재교육을 통한 다른 업종 이직이나 재취업에 대해 40대를 위한 맞춤형 지원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40대 일자리 정책 관련 사업에 고작 70억 원 정도의 내년 예산안을 배치한 것은 생색내기도 아니다. 40대의 위기는 한 가정의 붕괴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구조적 문제라고 말하기보단 사회문제로 인식해 적극적인 대응책을 정부는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