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의 노동과 법] 진영논리에 갇혀버린 노동개혁

입력 2019-10-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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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국 사태’가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 정치와 경제가 실종된 듯하다. 벌써 문재인 정권의 레임덕이 시작된 탓일까. 합리적 정책 토론은 사라지고 진영논리를 앞세운 독선과 아집만이 횡행하고 있다. 현 정권은 집권 초부터 일자리 창출,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철폐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노동개혁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으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지면서 동력을 많이 상실한 것 같다.

이러한 가운데 제조업을 중심으로 실물경제는 급격히 나빠지고 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엄습해오고 있다. 미중 간 무역전쟁이 장기화하고,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가 더해지면서 수출 중심의 우리나라 경제에 치명타가 되고 있다.

여기에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는 머지않아 생산인구 감소와 사회적 비용 증가라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도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20년’과 같은 장기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경제 상황이 이렇게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줄곧 고용 사정이 좋아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의 고용지표만을 보면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 같은 착시현상도 생긴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60대 이상 노인과 단시간 일자리만 늘어났을 뿐, 30·40대를 중심으로 한 양질의 일자리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소득 양극화 문제 또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개혁은 기득권에 대한 도전이기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노동개혁은 상대가 있는 만큼, 현안에 대한 냉철한 분석 능력과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정권은 정쟁에 지친 탓인지 그런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작금의 대내외적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노동개혁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이미 필연적 과제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개혁에 매진해야 한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대전제를 짚어 보자.

첫째, 노동 현안별로 객관화된 지표를 설정한 다음,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임금이나 근로시간과 같은 근로조건은 실물경제에 직결되는 노동 문제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노동정책을 수립할 때는 노동시장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분석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저임금의 광폭 인상은 오히려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을 줄어들게 하고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므로 과감한 수정이 불가피하다. 주52시간 근로제의 도입도 그 취지는 좋으나, 업종별 특성을 무시한 천편일률적 적용으로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으므로, 보다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둘째, 노동개혁은 정부 주도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노동 문제는 노사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상충되는 만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같은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하여 해결하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서 보듯이 각 주체가 기득권을 내려놓고 타협을 한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따라서 정부는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독일의 하르츠 개혁처럼 직접 주도권을 쥐고 큰 틀에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셋째, 모든 개혁이 그렇듯이 노동개혁 또한 법과 원칙에 입각하여 이루어져야 함은 마땅하다. 특정 세력이나 여론에 휘둘려 이루어진 개혁은 정통성과 설득력이 결여되어 일관성을 가질 수 없다. 다소 지루하게 돌아가더라도 마거릿 대처의 노동개혁처럼 법과 원칙을 통하여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인기에 영합하여 안이하게 정치적으로 타협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 조국 사태를 보면서 시급을 다투는 노동개혁이 법과 원칙에 의하기보다는 자칫 진영논리에 갇혀버리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단순한 기우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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