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고 있다. 경제난에도 줄곧 우위를 보였던 지지 여론이 반대 여론에 역전당했다. 반대가 과반을 넘어섰다. 조국 법무 장관 임명이 결정타였다. 여기엔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하나는 조국 사태를 진영논리로 몰고가는 판단미스였고, 다른 하나는 근거 없는 도덕적 우월주의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여권은 진보 지지층의 결집을 통해 반대 여론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보수와의 이념 대결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임명 강행 후 여론이 들끓었다. 급기야 불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튀었다. 지지율 하락은 그 결과다.
애당초 조국 사태는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의와 공정, 평등이라는 가치가 본질이다. 그것도 한결같이 문재인 정부가 전면에 내세운 것들이다. 도덕적 흠결이 많은 조 장관 임명으로 이런 가치들이 무너졌다.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약속한 문 대통령에게 국민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박근혜 탄핵 때 들었던 청년들의 촛불이 현 정권을 향하고 있다. 신뢰의 붕괴라는 치명적인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노무현 트라우마가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익을 위해 현실과 타협한 실용주의자였다. 진보세력에 금기였던 대북송금 특검 수용과 이라크 파병, 제주 해군기지 건설, 대기업과의 협력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참담했다. 35% 보수가 ‘반대의 성’을 쌓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 지지층마저 등을 돌렸다. 지지율은 급락했다. 노 대통령이 내놓는 메시지는 믿지 않는다는 의미의 ‘메신저 효과’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얘기는 그런 배경에서다. 핵심지지층 이탈은 레임덕을 불렀다.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으로 이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국민 다수의 반대 속에서 핵심 지지층이 미는 조국을 버릴 수 없었던 이유다.
86 운동권의 ‘근거 없는 도덕적 우월주의’도 이번 사태를 부른 요인이다. 당시 민주화라는 대의 앞에서 운동권 내부의 각종 차별과 비민주성 등 소의들은 묻혔다고 전해진다. 86 운동권에 ‘민주화 투쟁’은 훈장이자 다른 흠결들에 대한 면죄부였다. “적어도 당신들보다는 낫다”는 도덕적 우월주의로 이어졌다. 이를 토대로 승승장구했다. 조국사태는 그 연장선 아닌가 싶다. 검찰 개혁은 여권엔 양보할 수 없는 대의다. 자녀 표창장 조작 의혹 등 ‘대수롭지 않은’ 소의로 멈출 수 없다. 그들에겐 80년대 민주화라는 대의가 지금의 검찰 개혁으로 주제만 바뀐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착각이다. 근거 없는 도덕적 우월주의는 상대적으로 흠결이 많은 한국당엔 통할 수 있겠다. 깨어 있는 국민에겐 어림없는 얘기다. 20대와 50대, 중도층이 동을 돌린 이유다.
무능한 야당은 또 다른 비극이다.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국민은 한국당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여권의 폭주는 무능한 야당의 다른 표현이다. 야당이 대안 집권세력이라면 여권도 이렇게 오만하진 않았을 것이다. 정권을 뺏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다. 지금 한국당은 대안세력과는 거리가 멀다. 여론조사 결과가 잘 보여준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55%로 올라가도 한국당 지지율은 20%대다. 여권에 등을 돌린 사람들이 한국당으론 안 간다는 의미다. 당연한 결과다. 한국당은 탄핵 때 수구 이미지 그대로다. 탄핵에 사과한 사람도 책임진 사람도 없었다. 물갈이도 세력교체도 없다. 탄핵 시절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국민 눈에 한국당은 박근혜당이다. 여권의 헛발질만 기다리는 반대를 위한 반대당이다. 희망이 있을 리 없다.
정치는 양 날개로 굴러가는 것이다. 한쪽 날개가 꺾이면 다른 한쪽도 폭주하다 망하는 법이다. 지금 한국 정치가 딱 그렇다. 내년 4월 총선은 최선도 차선도 아닌 차악을 선택하는 게임이 될 게 뻔하다. 여야 모두 변해야 한다. 문 대통령부터 결자해지로 정국을 수습해야 한다. 여당도 대통령 눈치만 보는 거수기 정당서 탈피해야 한다. 한국당은 결단을 내릴 때다. 과거 세력과 결별할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다. 그게 어렵다면 차라리 헤쳐 모여라도 할 일이다. 4류 정치에 국민은 절망하고 있다. lee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