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 창업 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데스밸리(Death Valley)를 거쳐야 한다. 창업에 있어서 데스밸리란 창업 자금이 소진되는 3~5년차에 발생한다. 자금 부족으로 고전하는 과정이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하여 데스밸리라 하는 것이다.
창업 기업이 기술력을 갖고 혁신적인 제품의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매출을 지속적으로 발생시켜 성장하려면 몇 가지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 첫 번째 관문은 시장에서 고객을 찾아 주문을 받는 것이다. 창업 기업의 혁신 제품은 실용성이 검증되지 않아 선뜻 구매하여 채택하지 않는다.
혁신성이 너무 앞서면 기술적으로 차별화되었다고 평가받지만 기존의 시스템이나 표준이 적용되지 않아 수용되기 어렵다. 어느 고객도 최초의 실험대상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혁신 기업이 토로하는 어려움 중에 하나가 잠재 고객들에게 제품을 설명하면 기술적 우수성을 인정하면서도 레퍼런스(reference)를 찾는다는 것이다. 이미 어디에 공급하여 실용화되고 있는가를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실험실과 공장은 다르다. 개발에서 성공했다고 양산공정에서도 같은 성과를 낼 것인가의 확신이 없다. 아무도 먼저 자기네 공장에서 검증하는 리스크를 부담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일본이 수출규제하는 첨단 소재와 부품을 우리 중소기업이 개발했지만 대기업들이 채택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제품의 혁신성과 실용성이 검증된 다음에는 기존의 공급업체를 대체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고객 입장에서 오랫동안 거래하여 신뢰를 쌓아온 공급업체와의 거래를 끊고 신생업체로 교체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젊고 매력적인 연인이 생겼다고 오래 같이 살아온 배우자와 이혼하는 것과 같다.
이런 난관을 뚫고 계약을 체결하려 할 때 부딪치는 마지막 문제는 물량과 가격이다. 고객은 안정적 물량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창업 기업은 양산 설비가 없기 때문에 고객이 요구하는 품질과 가격 조건을 맞추지 못한다. 창업가가 개발한 우수한 혁신 제품들이 가격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시장에 안착하지 못한 사례를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청년창업사관학교 졸업 기업이 공장 작업자가 편리하게 착용할 수 있는 웨어러블체어(warable chair)를 개발했지만 단가가 수십만 원에 달하여 대량 구매로 연결되지 못한 예도 있다. 식당이나 가정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휴대용 스팀청소기를 개발하여 백화점에서 시험 판매하며 큰 관심을 끌었지만 가격대가 비싸 소비자 구매는 저조했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양산 설비에 투자하려면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 하지만 설비를 갖춘다고 매출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자칫 설비 투자에 따른 금융비와 고정비 부담이 커져 자금난이 가중될 수 있는 것이다.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고도 가격경쟁력이 미흡하여 성장을 하지 못하는 창업가에게 설비 투자를 하라고 권하면 다들 불안해하며 망설인다. 매출 실적이 부족한 상태에서 설비 자금을 투자받거나 융자받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그 이후에 상응하는 매출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인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자금이 말라가면서 생사의 기로에 허덕이는 죽음의 계곡을 경험하게 된다. 창업 기업이 성장 단계에서 직면하는 난관들을 극복하도록 지원해 주기 위하여 정부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혁신 제품을 공공기관이 우선적으로 구매하여 초기 납품 실적을 올리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벤처 투자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벤처 펀드에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여 창업 기업에 자금이 원활히 공급되는 여건을 조성하고 있다. 대기업의 상생협력을 장려하여 창업 기업의 판로와 마케팅 지원에 동참하도록 유인하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죽음의 계곡은 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오히려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하면 창업가의 헝그리 정신이 사라지는 부작용이 초래된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도 대기업에 인수된 창업 기업의 혁신성이 떨어진다는 보고가 있다. 대기업의 후광에 안주하여 죽기 살기로 달려드는 벤처정신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죽음의 계곡은 창업 기업을 강하게 연단시키는 훈련 과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