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함께하는 시간]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식물들

입력 2019-09-2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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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일 신구대학교식물원 원장·신구대학교 원예디자인과 교수

청명한 하늘빛과 선선한 바람이 부는 요즘 식물원의 모습은 불과 한두 주 전까지의 모습과는 무척 다릅니다. 다소 지친 듯한 모습으로 뜨거운 햇볕 그리고 비바람과 씨름하던 지난여름의 모습과는 달리, 마치 두 눈을 부릅뜨고 일에 몰두하는 건장한 청년 같은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이렇듯 한여름의 폭염과 비비람을 견뎌낸 식물들이 가을이 되면, 맑은 햇볕과 청량감을 주는 밤낮의 기온 차에 기운을 차려 다시 최선을 다해 삶을 이어갑니다. 마치 무더위에 혀를 빼물고 지쳐하던 사람들이 청명한 가을 하늘에 기운을 되찾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과학적으로 볼 때 식물이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인 광합성 활동은 계절적으로 변화를 보입니다. 나무들의 연중 광합성량 변화를 보면, 물론 수종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대체적으로 봄에 증가하기 시작하여 여름에 최대치를 보이다가 가을이 되면 다시 줄어들게 됩니다. 그렇지만, 광합성을 통해 만들어진 물질을 소비하는 호흡량도 여름 동안에는 더욱더 증가하기 때문에 실제로 몸에 축적되는 에너지는 봄과 가을에 더 많습니다. 사람들이 더운 여름에도 열심히 일을 하지만 다른 계절에 비해 효율이 좀 떨어지는 것과도 같아 보입니다.

양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질적 변화도 의미가 깊습니다. 봄여름에는 광합성한 물질들을 당장에 가지, 줄기와 잎을 키우는 데 사용하는 반면, 가을이 되면서부터는 식물들은 미래를 준비하는 데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특히 여러해살이풀과 나무들은 추운 겨울을 견딜 준비를 서두릅니다. 줄기를 단단하게 하고 겨울 동안 조직들이 얼지 않게 해주는 물질을 만들어 조직에 축적하거나 겨울을 견디고 다음 해 생장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잉여 영양분을 몸에 축적합니다. 또, 다음 세대로 거듭날 종자에 양분을 물려주는 일을 하거나 그 종자를 보호할 열매를 키우는 데에도 많은 에너지를 투입합니다. 그러니까, 식물들이 겉으로 볼 때는 늘 같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때에 맞춰 일의 내용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언제 몸집을 키워야 할지 언제 겨울을 준비해야 할지,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것입니다.

만일 식물을 키우는 사람이 욕심을 내, 가을이 되었는데도 식물의 몸집을 키우는 비료를 주게 되면, 식물들은 때를 잊고 생장을 지속합니다. 몸을 단단하게 하기보다는 몸집 키우기만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서리라도 오게 되면 이런 식물의 조직들은 겨울을 맞을 채비를 못했기 때문에 그대로 피해를 입어 죽게 됩니다.

이렇듯 식물은 가을에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지만 그 목표와 방향이 봄여름과는 사뭇 다릅니다. 사람도 늘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하지만, 때에 따라 그 목표와 방향은 달라져야 할 것입니다. 젊었을 때에는 사회적으로 자기 성장이 주요 목표와 방향이라면 나이가 들어서는 주변을 돌보고 보살피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조직에서 직급별 역할도 이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조직의 상급자 또는 책임자는 그 휘하의 사람들이 문제없이 살아가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혹은 직급이 올라가서도 여전히 자신의 영달만을 추구한다면 때를 잊은 식물들처럼 곧 서리를 맞아서 더 빨리 삭아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식물들이 때를 잊게 만드는 비료 주기처럼 사람들에게도 주변에서 끊임없는 부추김이 있습니다. 또 식물들과 달리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그런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때를 잊게 만드는 주변의 유혹과 스스로의 착각으로부터 자신을 잘 지키는 것이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사족을 한 가지 달자면, 두루 보살피는 것과 잔소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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