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장사의 차등의결권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증권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도입을 계기로 차등의결권을 상장사까지 확대 적용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도 비상장 기업에 한해 차등의결권이 허용될 예정이다. 정부가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이달 중으로 차등의결권 주식 발행과 관련된 구체적인 도입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비상장사의 차등의결권 시행이 본격화되면 상장사 도입 논의도 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차등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의결권을 부여해 주주 지배권을 강화하고 경영권을 보호하는 제도다. 구글의 경우 창업자 래리페이지와 세르게이브린이 1주당 10의결권을 행사하는 차등의결권을 시행 중이다. 이들은 이를 통해 60% 이상의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반면 상법상 국내 상장사들은 1주당 1의결권만 허용되고 차등의결권은 제한돼 있다. 재벌 오너의 경영권 남용 우려와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최근 엘리엇과 같은 행동주의 펀드가 활발해지면서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차등의결권 도입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강택신 한국상장회사협의회 법학박사는 “차등의결권제도를 허용하고 있는 일부 아시아시장도 일정 요건을 둬 상장사에 대한 의결권 유연화를 허용하고 있다”며 “기업의 지속성장과 모험자본의 회수 활성화를 위해 상장 규정의 정비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도 자본시장 환경 변화에 발맞춰 차등의결권 도입을 검토 중이다. 구글과 같은 글로벌 혁신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방안으로 관련 연구 용역을 발주한 바 있다. 홍콩증권거래소와 싱가포르증권거래소는 지난해 차등의결권제도를 도입했다. 상하이증권거래소도 올해부터 차등의결권 주식을 발행하는 기업 상장을 허용한다. 미국과 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대부분 시행 중이다.
다만 상장사 차등의결권이 도입되기 위해서는 안전장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가령 차등의결권주 소유자의 퇴임이나 자격상실 시 보통주로 전환하는 일몰조항을 도입하거나 양도상속을 제한하는 규정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오태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대기업은 기관투자자들의 경영 참여에 대한 우려로, 중소기업은 상속에 따른 지배력 약화 등으로 차등의결권에 대한 수요가 크다”며 “다만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거나 보통주의 의결권 희석으로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도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