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는 배트맨의 최대 라이벌이다. 초능력은 없지만 어릿광대와 같은 분장을 하고 인간 심리의 어두운 면을 파고들면서 배트맨을 가장 위협한다.
그동안 존슨을 묘사하는 단어로 많이 언급된 것이 바로 ‘어릿광대’다. 가디언은 7월 존슨이 영국 총리에 취임하자 나라가 불타는 가운데 ‘광대(Clown)’가 ‘왕관을 썼다(Crowned)’고 비꼬았다. 존 메이저 전 총리는 2016년 브렉시트 캠페인을 주도했던 존슨에 대해 ‘궁정의 어릿광대’라고 비판했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기사에서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영국이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것을 축하하고자 와이어를 타고 활강 도중 공중에서 멈춰 버려 외국 언론이 ‘광대와 같은 응원단장’으로 주목했다고 전했다.
사실 이런 노골적인 묘사는 브렉시트를 반대하는 언론 매체들의 편견에 가득 찬 인신공격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릿광대 조커처럼 존슨 총리도 그간 악당의 면모를 과시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이는 자업자득일 수도 있겠다.
조커가 거짓 정보로 사람들을 기만한 것처럼, 존슨도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영국이 매주 EU에 3억5000만 파운드(약 5100억 원)의 분담금을 낸다’는 허위사실이 적힌 문구를 버스에 걸어 전국을 활보하게 했다. 이는 믿기 어려운 브렉시트파의 국민투표 승리로 이어졌다.
7월 보수당 대표를 뽑는 마지막 선거유세에서는 비닐 포장된 훈제청어를 꺼내들며 “EU가 훈제청어를 판매할 때마다 플라스틱 냉장용 아이스팩을 써야 한다는 규제를 가해 판매자가 수십 년간 막대한 비용을 치러야 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또한 하루 만에 새빨간 거짓말로 판명됐다. EU는 가공 생선에 대한 규제가 없었기 때문.
존슨의 전임자인 데이비드 캐머런은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테리사 메이는 EU와의 협상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뛰어들었다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존슨은 최소한 합리적인 논리에 기대 브렉시트에 임했던 전임자들과 달리 온갖 거짓말로 국민의 감정에 호소하면서 사태를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
영국 의회가 최악의 결과인 ‘노 딜 브렉시트’ 차단에 나서자 합리적인 논리와 계획으로 의원들을 설득하기는커녕 극단적인 단어들을 써가며 의원들을 위협하고 있다. 존슨 총리는 5일(현지시간) “EU에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하느니 차라리 도랑에 빠져 죽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런 극단적인 언사를 일삼으니 ‘어릿광대’라는 비웃음을 받는 것이다. 지금 영국은 광대의 공연을 볼 만큼 한가한 입장이 아니다. baejh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