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잘나갔던 미국 경제부터 꺾이고 있다는 신호가 잇따른다. 경기 상황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게 돈이다. 미 국채 단기물(2년 만기) 금리가 장기물(10년)보다 높아지는 역전(逆轉) 현상이 빈번하다.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아야 정상이다. 하지만 불황이 예상되면 돈은 금리와 달러 가치 하락에 베팅한다. 장기금리가 단기보다 낮아지는 비정상이 발생하는 이유다. 미국은 1970년대 이후 6차례의 경기침체 이전 모두 장·단기 금리가 역전됐다. 미국의 올해 1분기 성장률은 전기 대비 3.1%였으나 2분기는 2.0%로 떨어졌다.
한국 경제의 상태는 훨씬 암울하다. 격화일로에 있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가장 큰 피해에 노출된 곳이 한국이다. 일본의 공격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우리 산업 전반을 겨냥한 ‘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국)에서의 한국 배제로 양국은 경제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홍콩 사태와 영국의 노 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유럽연합 탈퇴) 우려, 신흥국 금융위기 등이 다발적으로 몰려와 불확실성을 증폭시킨다. 자유무역의 세계 질서가 깨지면서 ‘너 죽고 나 살기’식 각자도생(各自圖生)이 지배한다. 글로벌 가치사슬이 무너지는 상황은 수출의존형 개방경제 구조인 한국에 치명적인 타격이다.
2분기 우리 경제성장률(한국은행)은 전기 대비 1.0%에 그쳤다. 이마저도 1분기 -0.4%의 역성장에 따른 기저효과다. 특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기여도에서 민간은 -0.2%P, 정부가 1.2%P였다. 정부가 재정을 쏟아부어도 민간이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 목표인 2.4~2.5% 성장은 어림도 없고, 한은 전망치 2.2%도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해외 투자은행(IB) 상당수는 1%대 추락을 점친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물가 하락이다. 8월 소비자물가상승률(통계청)이 전년 동월 대비 -0.04%를 기록했다.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우리나라 경제개발 이래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마이너스 물가다. 올해 연간 상승률도 0.5%에 미달할 전망이다. 이 또한 역대 최저다.
디플레 조짐이 뚜렷하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에 물가가 하락하면서 경제시스템이 무력해지는 현상이다. 물가가 떨어지면 수요 감소로 소비가 위축되고, 기업 생산과 투자도 감퇴한다. 디플레는 또 구조조정과 대량 해고를 수반한다. ‘L’(lay-off)의 공포다. 정부 정책 또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장기불황의 터널에 갇힌다.
정부는 여전히 ‘경제위기설’만 나와도 펄쩍 뛴다. 펀더멘털이 튼튼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하지만 펀더멘털 얘기가 자꾸 나오는 것부터 경제불안이 커지고 위기가 닥쳐오고 있음을 의미하다는 걸 시장은 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년 연속 물가 하락이 이어질 때를 디플레로 본다. 그런 점에서 디플레 논쟁은 성급하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경로가 막혔다는 데 있다. 대외여건 악화 탓만이 아니다. 잠재성장률은 추락하는데 그것도 달성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마차로 말을 끌겠다’는 소득주도성장론은 그동안 한국 경제의 도약을 이뤄낸 성장 패러다임의 부정이었다. 포퓰리즘에 기댄 감성적 복지와 섣부른 분배 이념의 덫에 걸려 경제가 활력을 잃었다. 경제의 뿌리부터 곪아들게 하는 ‘한국병’(韓國病)이다. 정부는 이곳저곳 세금 퍼붓고 있는데, 어디서 돈을 벌어 오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는 무성하지만, 전략은 허술하고 실행능력도 의문이다. 반(反)기업의 온갖 노동·환경·안전 규제 등이 성장의 주체인 기업들을 이 땅에서 버티기 어렵게 하고 있다. 결국 한국 경제가 잃어버리는 시대로 빠져들고 있다. 마침 한국에 와 있는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한국 경제의 디플레를 막기 위한 정부의 과감하고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kunny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