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평의 개평(槪評)] 세상에 나쁜 ‘명절’은 없다

입력 2019-09-03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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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부 차장

일주일 뒤면 민족 대명절인 추석의 연휴가 시작된다. 명절은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들이 만나 화목과 우애를 다지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 의미가 있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 기간에 가족 간 갈등이 발생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다. 즐거워야 하는 명절이 여자도 남자도 다 싫어하는 골칫거리가 된 것이다.

최근에는 예전보다 차례상이 간소화되고 시가와 처가를 번갈아 방문하는 등 여성의 가사 노동과 차별이 줄었지만 본질은 달라진 게 없다.

지난 설에는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명절 문화 개선과 명절 폐지 등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차례 때문에 여성들이 음식 만들기나 상 차리기 등 늘어난 가사노동에 시달린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명절 성차별 1위는 ‘명절에 여성만 하게 되는 상차림 등 가사분담(53.3%)’이었다.

아직 가부장제에서 유리한 위치에 있는 남자들도 장거리 운전과 벌초에 피곤하고 가사 노동, 처가 이동 등을 놓고 부모님과 아내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게 불편하고 싫단다.

이런 갈등은 심하면 우울증으로도 이어진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명절 우울증 경험’에 대해 조사한 결과, 남녀 직장인 10명 중 4명이 명절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남녀의 역할 분담 문제, 고부간의 갈등, 친척 등 낯선 관계에서 오는 부담감 등으로 그동안 쌓였던 불만과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다. 매년 명절 연휴 직후에는 이혼소송을 제기하거나 협의이혼을 신청하는 건수도 증가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연휴 다음 달에 접수된 이혼소송 건수는 3374건으로 직전 달(2616건)보다 29% 늘었다. 2017년에는 3215건으로 전달(2519건)에 비해 27.6% 증가했다.

명절 연휴를 즐거운 빨간 날로 느끼기 위해서는 현실에 맞지 않는 전통 문화를 실용적으로 바꿔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명절 지내기가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유교 전문가들은 차례상은 ‘푸짐하게 격식에 맞춰’가 아닌 분수에 맞게 정성껏 차리면 된다고 한다. 매년 연휴 끝에는 남은 명절 음식 보관 방법과 레시피가 쏟아져 나온다. 음식을 줄이는 것이 쓰레기도 줄이고, 결국 환경 보전에도 도움이 된다.

형식보다는 명절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1인 가구, 맞벌이 증가 등으로 사회가 바뀌는 만큼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1983년부터 하락한 출산율은 2018년 0.98명으로 떨어지며 사상 처음 1명 아래까지 내려갔다. 10대, 20대들의 절반은 외동이다. 앞으로 십여 년 뒤의 명절의 모습은 달라질 것이다.

시대가 변하는데 관습의 끝자락을 붙잡고 버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명절을 좀 더 평등하고 마음 편히 보낼 방법을 찾아보자. 의례를 중시하느라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을 가사 노동에 지치게 하지 말고 성차별로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서로가 노력해 보는 건 어떨까. (결혼, 취업, 2세 계획 등 덕담을 가장한 잔소리는 제발 하지 말아 주세요!)pe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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