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룸만은 결사반대 해야 합니다. 힘을 모아서 끝까지 분투합시다.”
29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호전적인 단어들이 난무했다.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30여 명의 사람이 거리에 모였다. ‘역세권 청년임대 주택’ 건설을 반대는 ‘PAT 부지대책위원회(대책위)’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682가구 규모의 역세권 청년주택 중 ‘원룸’은 기필코 막아야 한다며 의기투합했다.
서울시는 2016년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을 발표하면서 2022년까지 8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다. 휘경동 281-1도 선정됐다. 이 인근에 682가구 규모의 역세권 청년주택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원룸은 물론 신혼부부를 위한 투룸 주택도 있다.
주변 임대업자들로 구성된 대책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청년임대 주택이 들어서면 월세가 낮아질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 지역은 경희대와 서울시립대, 한국외대 3개 대학이 근접해 있는 곳이다.
신현종 대책위원장은 “담보대출을 받아서 원룸을 지은 사람이 태반이다. 임대료가 낮아지거나 공실이 생기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죽어 나간다”라고 강경하게 말했다. 지금도 전체 500세대 원룸 중 3분의 1이 공실 상태라고 그는 주장했다.
신 위원장은 이어 “신혼부부를 위한 투룸까지는 인정할 수 있어도 원룸은 절대 안 된다”라며 “이 정부는 청년들을 위한 정책만 있고, 우리처럼 늙은 지역민을 위한 일은 하지 않는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휘경동 청년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임대업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것.
통계청이 발표한 ‘서울 거주 청년 1인 청년 가구 주거 빈곤율 추이’를 보면 2000년에 31%였던 주거 빈곤율은 2015년엔 37.2%로 증가했다. 청년 중 월세로 사는 비율은 60%나 된다. 열악한 주거 환경에 비싼 월세를 주고 사는 청년이 부지기수. 임대업자들의 주장에 공감할 수 없는 이유다.
직장인 강도영(28) 씨는 “임대업자들은 청년 임대주택으로 생존권을 위협받을 것이라고 하지만, 우린 이미 생존권을 위협받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신 씨는 이어 “비싼 월세 탓에 돈 아끼려고 반지하를 전전하는 청년들도 많다. 저들은 대출금 못 갚을 생각을 하지만, 우린 자산이 없어 돈을 빌릴 수도 없다”라고 설명했다.
경희대에 재학 중인 신 모(22) 씨도 “관리비를 포함하면 월세가 50만 원쯤 되는데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다. 뭐가 고장 나더라도 제때 고쳐주지도 않는다”라며 “그동안 누릴 것 많이 누렸으면서 또 청년들의 앞길을 막으려고 거리에 나온 것 같다”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청년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임대주택을 추진해야 한다는 견해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회기역 근처에는 대학생이 많아 원룸 수요가 높은 편”이라고 진단하면서 “임대주택이 600가구 들어선다고 해서 임대업자들에게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라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임대업자들이 집단행동을 ‘이기주의의 전형’이라고 했다. 그는 “청년 임대주택뿐 아니라 공공임대주택이 생기고 집값이나 월세가 떨어진 사례를 찾기가 힘들다”라며 “수요공급 법칙에 의해 월세가 떨어질 수도 있지만 대체로 공급이 늘어나면 수요도 증가해 월세가 큰 폭으로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임대업자의 수익성과 변화하는 인구구조를 고려해 원룸은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인구가 점점 줄면 원룸 수요도 떨어질 것”이라며 “주택 규모를 키워서 신혼부부가 살 수 있게 투룸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편이 낫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