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간지(干支)로는 을사년에 일제는 우리나라의 내정에 깊이 간여하기 위해 외교권을 박탈하는 조약을 체결하고 서울에 조선총독부의 전신인 조선통감부를 설치하였다. 사실상 나라가 일본에 넘어간 뼈아픈 조약이다.
그런데 이 조약을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을사보호조약’이라고 불렀다. 초,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을사보호조약’이라고 표기되었다. 그러다가 1993년, 군사정부가 막을 내리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文民政府)’가 들어서면서 민간과 학계에서 ‘을사보호조약’이라는 말 대신 ‘을사늑약’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였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보호조약’이 ‘늑약’으로 완전히 교체되었다.
보호조약은 “국제법상의 보호 관계를 맺는 조약”으로서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자기의 보호 아래 두고 그 나라의 외교 또는 내정에 관한 주권의 일부를 행사하기로 하는 조약”을 말한다. 따라서 을사보호조약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한, 우리는 일제의 ‘보호’를 받았고 보호를 받았으니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광복 이후, 50년 동안 ‘을사보호조약’이라고 쓰고 또 그렇게 가르쳤다는 사실이 참 어이가 없다. 도대체 정부는 그동안 무얼 했단 말인가! 친일의 잔재가 정부 내에 그렇게 짙게 남아 있었다.
늑약은 ‘勒約’이라고 쓰며 각 글자는 ‘굴레 늑(륵)’, ‘묶을 약(약속할 약)’이라고 훈독한다. 굴레는 “마소의 머리에 씌워 고삐에 연결한 물건”으로서 마소를 강제로 부리기 위해 씌운 속박 장치이다. 따라서 늑약은 속박하기 위한 조약이다. 일제는 우리에게 그런 늑약을 강요했던 것이니 당연히 을사보호조약이 아니라 을사늑약이라고 써야 한다. 가슴 아픈 일이다. 한마디 말에서라도 일재의 잔재를 털어내는 것이 진정한 극일의 길일 것이다. 꼼꼼히 살펴서 우리의 자존심을 살리는 말로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