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30대는 상실감과 분노를, 40·50대는 상대적 박탈감을, 60·70대는 진보진영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촌철살인이다. 이 한마디에 국민 정서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공정과 정의를 앞세운 조 후보자의 시원한 쓴소리에 열광했던 청년들은 “장학금과 논문 스펙, 이게 공정이냐”고 분노한다.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들이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킨 촛불까지 든 건 아이러니다. 4050에선 “난 아이에게 해준 게 없는데…”라며 허탈감을 토로한다. 60대 이상에선 “강남 좌파의 민낯을 봤다”는 얘기가 나온다.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이 잘 보여준다. 26일 리얼미터조사에서 ‘지지하지 않는다(50.4%)’가 ‘지지한다(46.2%)’를 역전했다. 중앙일보 조사에선 ‘조 후보자 임명 반대’가 60%를 넘었다. 그간 해명 없이 “더 낮추겠다” 등의 유체이탈 화법과 ‘사회 기부카드’로 버티던 조 후보자가 결국 딸 의혹에 대해 사과한 이유다. 그런데도 여당에선 “언론이 정권을 흔든다”는 말이 나온다.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게 법에도 없는 국민청문회다. 민심 왜곡이다. 총리도 2일 하는 청문회를 3일 하자는 한국당도 억지다. 다 정략적 꼼수다. 블랙 코미디가 따로 없다. 진실에 목마른 국민은 속이 터진다.
‘조국 논란’은 국회 인사청문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한다. 이런 상황에서 청문회가 과연 필요하냐는 것이다. 청문회는 대통령의 인사권 견제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 2002년 도입됐다. 고위 공직자의 도덕성과 자질, 업무 역량을 공개 검증해 국민의 행정부에 대한 신뢰를 제고한다는 게 당초 취지였지만 빛이 바랜 지 오래다. 청문회 무용론이 끊이지 않는다. 문제점은 대체로 두 가지다. 우선 진보와 보수 이념을 앞세운 정치권의 진영논리다. 후보자 낙마로 여권에 타격을 가하겠다는 야당과 문제 후보자를 무조건 감싸는 여당의 행태는 17년 전 레코드다. 이성이 마비된 진흙탕 싸움이 반복되고 있다. 청문회는 더 이상 검증의 장이 아닌 이념의 전쟁터로 전락한 지 오래다.
아울러 청문회 후 대통령의 장관 임명은 대통령 인사권과 국회의 견제권이 충돌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국회 동의를 요하는 자리가 아닌 장관들에 대해서는 청문회 후 대통령이 임명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그러니 후보자들에겐 ‘청문회만 버티면 된다’는 게 공식이 됐다. 후보자들은 의혹 해명을 무조건 청문회로 미룬다. 정작 청문회 때는 “기억이 안 난다” “송구하다”는 답변으로 얼버무린다. 하루만 버티자는 심산이다. 청문회에서 의혹이 해소될 리 만무하다. 야당 반발로 청문보고서 채택이 안 되고 대통령은 임명을 강행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만 벌써 17명(장관급 포함)이다. 노무현 정부(3명)와 이명박 정부(16명), 박근혜 정부(10명)를 이미 넘어섰다. 조국 후보가 버티는 이유다.
결국 청문회는 통과의례에 불과하다. 후보의 낙마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청문회가 아니다. 국민 여론이다. 청문회 전에 의혹들이 쏟아지는 배경이다. 낙마자는 청문회 전 여론에 의해 결정된다. ‘청문회 전 의혹 공방 → 문제 후보 낙마 → 청문회 → 임명 강행’의 악순환이 17년째 반복되고 있다.
이젠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런 청문회라면 계속할 이유가 없다. 실효성 있게 보완해야 한다. 우리가 모델로 삼는 미국의 제도를 참고할 만하다. 사전 의혹 제기를 차단해 정쟁을 막는 대신 국민적 의혹 해소를 위해 청문회 횟수를 늘리고 “기억이 안 난다”는 등 불성실한 후보자는 국회모독죄로 사법처리할 수 있도록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이게 어렵다면 차라리 청문회를 없애고 공개 검증과정을 길게 가져가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leej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