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합의 없이 EU를 탈퇴한 노딜 브렉시트 시행 2주째를 가정해 보았다. 영국 내 브렉시트 지지자와 반대자들의 시위도 점차 격화되어간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EU를 규탄하며 1940년 상반기 나치 독일에 홀로 항거하던 ‘영국의 전투’를 상기하자며 세력을 규합 중이다. 한편 EU 잔류 지지자들은 총선 승리를 위해 노딜 브렉시트를 감행한 보리스 존슨 총리를 만고의 역적으로 규탄하며 EU 잔류/탈퇴 제2 국민투표를 요구한다.
위의 노딜 브렉시트 시나리오는 영국이 EU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됐는지를 보여준다. 영국 식료품과 공산품의 절반 정도가 EU에서 들어온다. EU 28개 회원국 간에는 아무런 장벽이 없는 단일 시장인데 영국이 여기에서 합의 없이 탈퇴한다. 국내처럼 물품이 통관 없이 들어오기에 재고는 기껏해야 보통 2~3주. 하지만 통관절차를 처리할 전산시스템이 없어 EU산 물품의 통관이 거의 정지된다. 글 첫머리의 혼란은 영국 교육부와 재무부의 노딜 브렉시트 대비 보고서에서 인용했다. EU에 수출하는 영국 기업 가운데 27%만이 노딜 시 필요한 수출 통관 사업자 자격을 얻었다. 이처럼 노딜 브렉시트는 준비가 아주 미비하고 경제에 끼칠 영향이 심각하다.
그런데도 지난달 24일 총리에 취임한 보리스 존슨은 백스톱(backstop) 폐기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오는 10월 31일 EU를 탈퇴하겠다며 노딜 브렉시트도 불사하겠다는 태세다. 그는 대부분의 각료를 강경 브렉시트 지지자들로 채웠다.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 아일랜드 간에는 현재 국경통제가 없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국경통제가 필요한데 이를 저지하는 게 안전장치인 백스톱이다. EU는 이제까지 일관되게 백스톱 재협상은 없음을 유지해왔다. 박차고 나가려는 영국보다 EU 회원국 아일랜드가 우선이고 더구나 북아일랜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안전장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신임 총리는 EU와 ‘투쟁’에서 협상력을 제고하고 조기 총선용 명분을 쌓기 위해 노딜 브렉시트 불사 전략을 내세웠다. 최근 존슨의 최측근은 노딜 브렉시트 실행 후 총선을 원한다고 밝혔다. 일간지 데일리텔리그래프가 지난 1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딜 브렉시트 후 총선을 치러야 보수당이 과반을 확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총선도 치르지 않고 전임자의 중도 사퇴로 총리가 된 존슨이 총선에서 이기려 무책임하게 노딜이라는 국가 위기를 야기할 수 있을까?
영국 하원은 노딜 브렉시트를 저지하기 위해 수차례 수정안을 통과시켰으나 아무런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하원의 상당수와 EU가 원치 않는 노딜이 발생할 수 있다. 노딜을 저지하기 위해 집권 보수당에서 반란표가 나와 존슨이 총리직을 상실하는 경우를 가정할 수 있다. 14일 안에 신임 정부가 구성되지 않는 한 기존 총리가 업무를 대행하면서 조기 총선을 치른다. 이때 존슨은 선거 일자를 브렉시트 예정일 10월 31일 이후로 잡아 노딜 브렉시트 후 총선에서 승리한다는 속셈이다. 불문법 국가인 영국에서는 이런 정치적 불확실성이 발발했을 경우 총선 일자를 규정한 명확한 법조문이 없다. 공무원의 수장인 국무조정실장은 이 경우 총리 대행이 브렉시트를 연기하고 탈퇴 이전에 조기 총선을 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 제레미 코빈 당수도 지난 8일 국무조정실장에게 서한을 보내 EU와 합의 없이 탈퇴한 후 조기 총선을 치르는 그런 상황을 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렇다면 민주적 정통성이 없는 존슨은 선(先)브렉시트 후(後)조기 총선 전술을 포기할까? 그는 브렉시트 선거전에서도 몇 차례 거짓말을 하고 입장을 번복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23일 노딜 브렉시트를 미국의 보호무역 및 통상전쟁과 함께 세계 경제의 주요 리스크로 명시했다. 우리는 지난 6월 초 영국과 임시 조치 협상을 타결했다. 노딜 브렉시트가 일어나도 기존 한-EU FTA 수준에서 양국이 무역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러나 브렉시트가 단기간에 해결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 G2의 무역전쟁, 일본의 경제도발, 노딜 브렉시트… 이런 불확실성이 맞물려 빚어낼 초불확실성에 대비해 철저한 모니터링과 대책이 필요하다.